[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
풍수 예언으로 본 북한 핵과 김정은의 운명
2016-03-09(동아일보)
안영배 전문기자
북한의 도발적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에 맞선 대북 제재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란으로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상황을 대놓고 바둑 싸움에 비유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추(環球)시보는 “사드를 배치하면 한국은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바둑 싸움에서 어쩔 수 없이 바둑돌 신세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무례하고 불쾌한 제국주의적 시각이지만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미-일-중-러 4대 강국이 치열하게 수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가 한국을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들 사이에 낀 작은 동물에 비유한 것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내다본 선지자들이 있다. 구한말에 활동한 강증산(1871∼1909)은 한반도의 ‘4대 국운혈(國運穴)’ 중 하나인 순창 회문산의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반도 미래가 다섯 신선이 바둑판에 둘러앉아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의 형국처럼 전개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묘하게도 당시 조선은 지방 행정 체계를 바둑판 모양으로 바꿨다.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8도제를 폐기하고 23부 337군으로 지방조직을 개혁한 것. 모두 합쳐 360개로 재편한 부군제(府郡制)는 바둑판의 360점과 일치한다(바둑판은 19×19줄로 모두 361점이지만 정중앙의 1점은 왕의 자리라 하여 제외한다).
강증산은 “조선은 바둑판이고 조선 사람들은 바둑돌이다. 두 신선은 바둑을 두고 두 신선은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다.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기에 손님 접대만 잘하면 주인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백돌과 흑돌 두 패로 나뉘어 바둑을 두고 훈수하는 네 신선은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를 가리킨다. 나머지 한 신선은 바둑판 주인인 한국이다.
네 신선이 벌이는 바둑 게임의 결말은 동학계 비결서로 알려진 ‘춘산채지가’에 묘사돼 있다. “수는 점점 높아가고 밤은 점점 깊어간다. 상산사호(商山四皓·중국 진한 시대에 난세를 피해 산시 성 상산으로 들어가 바둑을 두며 조용히 살던 네 명의 도인) 네 노인이 개가 짖고 날이 새니 각자 귀가하는구나. 주인 노인 거동 보소. 일장춘몽(一場春夢) 깨어보니 바둑판과 바둑돌은 주인 차지 되었구나.”
선지자들의 예언은 한결같이 4대 강국이 열심히 바둑 싸움을 벌이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각자 갈 데로 돌아가고 한반도는 결국 한국 몫이 된다고 했다. 오늘의 국제정치 상황에서 이런 예언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동북 간방의 명당인 한반도를 청룡인 미국과 일본, 백호인 중국과 러시아가 감싸주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이라는 숙제를 풀어야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특히 한반도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기(殺氣)인 핵무기를 수용할 수 없는 땅이다. 팔괘(八卦) 방위론으로 간방(艮方·동북방)에 해당하는 한반도 자체가 살기와는 상극인 생기(生氣)의 땅이기 때문이다. ‘주역 설괘전’에서는 간방을 만물의 결실과 탄생이 동시에 이뤄지는 곳(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의 생식기 부위처럼 생명의 잉태와 출산이 이뤄지는 성스러운 터라는 뜻이다. 지구의를 보아도 그렇다. 일본과 미국이 좌청룡(左靑龍)을 이루고 중국과 러시아가 우백호(右白虎)를 이뤄 명당 한반도를 감싸주는 모양새다.
북한의 핵은 한반도에 스스로 살기를 끌어들이는 꼴이다. 풍수에서 명당은 그 기운에 맞지 않는 것을 내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도교 경전 ‘음부경(陰符經)’은 “땅이 노해 살기를 뿜어내면 용과 뱀이 땅 위로 나온다”고 경고한다. 화산과 지진을 용과 뱀으로 비유한 말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백두산 화산이 폭발할 조짐이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핵을 고집하는 김정은 정권 역시 한계로 향하고 있다. 한국 비결서들에 들어있는 예언 코드를 풀이해보면 한국의 19대 대통령 임기 중에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와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진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 신선들이 한반도라는 바둑판에서 평화롭게 물러가도록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고 통일 과업을 수행해 낼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탁월한 협상력으로 강동 6주를 되찾은 고려의 정치가이자 외교가인 서희 같은 지도자가 그리운 요즘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