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행]주문(呪文)이란 무엇인가 ?
”태을주(太乙呪)는 심령(心靈)과 혼백(魂魄)을 안정케 하여
성령(聖靈)을 접하게 하고, 신도(神道)를 통하게 하며
천하 창생을 건지는 주문이니라“(도전 11편 180장 )
태을주(太乙呪에)는 이런 권능이 담겨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주문을 고루한 미신(迷信) 정도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많이 있다. 이에 주문의 참뜻을 바로 밝히고자 한다.
가. 주문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완성문
주문이란 무엇일까 ?. 영화 "천녀유혼" 에 등장하는 영환도사처럼 악령을 물리치고 술법을 부릴 때 쓰는 주술(呪術)일까 ? , 아니면 모 개그맨이 도포입고 긴 수염을 휘날리며 외우는 ‘숭구리 당당 숭당당' 같은 신주(神呪)일까 ?, 아니면 우리 귀에도 익숙한 "수리수리 마하수리" 같은 비밀스런 밀주(密呪)일까 ?, 그도 저도 아니면 ‘멕베드" 에 등장하는 세 마녀가 남에게 재앙을 끼치기 위해 외우는 저주(詛呪) 같은 것일까 ?, 또 샤먼들이 신과의 대화에서 쓰는 무주(巫呪)라는 것일까 ?도대체 주문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
사전(辭典)을 찾아보면 "음양가(陰陽家)나 술가(術家)에서 술법을 부릴 때 외우는 글귀 또는 일정한 절차(節次)에 따라 외우면 자연력(自然力) 또는 신(神)이나 인간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통어(統御)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주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글귀" 로 나와 있다.
또 백과대사전에는 "무당들의 신직자(神職者)가 신(神)의 힘이나 또는 재액을 물리치려고 비는 법" 으로 나와 있다. 말하자면 주문은 샤먼들이 신과의 통어(通語)를 통해 신탁(信託)을 받거나 재앙을 물리치고 복(福)을 부르는 파동문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에게 비춰졌던 주문의 이미지는 거의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주문을 대단히 나쁜 걸로 이해하는 사람들조차 있다.
이는 서양의 문물만을 세련된 것으로 존중하고 동양의 정신문화를 미신(迷信) 정도로밖에 치부하지 않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주문이 구전(口傳)이나 비전(秘傳)으로 내려오다시피 하여 주문의 참된 면목을 오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좀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주문의 참뜻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주문이 단순히 잡술이나 부리고 악귀나 쫓는 술법 따위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기 위해 깨달음과 완성을 추구하는 "수련법" 이자 "완성문" 임을 밝혀 보고자 한다.
나. 주문의 어원(語源)
주문은 산스크리트어로 만트라(Mantra) 라고 한다. 글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마음을 뜻하는 만(man) 과 보호, 도구의 의미가 담겨있는 트라(tra) 로 이루어져 있다.
즉, 만트라는 "마음이 그릇된 망상에 빠지는 것을 보호해 주는 도구, 수단" 이란 뜻으로 한역(漢譯)하면 주(呪)가 된다. 보통은 만트라 라고 하지만, 총지(總持)나 능차(能遮)를 뜻하는 "다라니(dharani)" 와 명주(明呪)를 뜻하는 "비트야(Vidya)" 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두가 비밀어(秘密語)이자 진실어(眞實語)의 동어(同語)로 언어수행을 통해 본원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언어 수행이란 신의 명호(名號)나 어떤 에너지가 응축된 글귀를 연속적으로 반복해 부름으로써 차크라를 각성시키거나 영(靈)적인 개발을 하여 쿤다리니, 즉 완성자(完成者)가 되려는 도법(道法)을 말한다.(나중에 이것이 종교적으로 확대되면서 불보살이 등장함과 함께 신앙의 형태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팔상록에 보면 석가모니와 관음보살 사이에 대비주가 재생되는 대목이 나온다.)
漢字속에 나타난 주문(呪文)의 뜻을 살펴보면 주(呪) 자는 ‘빨주" 자(字) 이다. 빨주(呪) 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입구(口) 자(字)에 부르다, ’크다 라는 뜻을 지닌 "황(兄)" 자(字)로 이루어져 있다. 즉 주(呪)란 글자 속에는 "보이지 않는 힘과 권능과 신의 가호를 부른다". 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문(呪文)이라 함은 "우주의 생명력(生命力)을 빨아들이는 글", "신(神)의 권능과 영성과 힘을 빨아들이는 글" 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주문을 읽다" 라는 말을 영어로는"invoke"라 한다. 이 말은 "간구하다(Invoke)", "간절히 구하다(request arnestly)"‘소원을 빌다(call down from heaven), 그리고 "주문을 읽다" 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원래 invoke라는 단어는 라틴어 "invokara" 에서 나온 말이다. 즉 in과 vokare라는 두 낱말이 합성돼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in은 on과 같은 뜻의 접두사(接頭辭)이고 vokare는 "부른다, 간구하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서양의 언어 속에 나타난 주문(呪文)의 뜻은 "어떤 신이나 우주의 절대자에게 소원(所願)을 간구하며 그 힘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반복 기도행위" 이며 "신(神)의 권능과 영성을 자기 영혼 속에 받아들여 조화와 생명을 창조" 하려는 것이다. 이 밖에 철자(綴字)를 뜻하는 spelling의 ‘spell ' 도 원래는 주문(呪文)을 뜻하고 있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이나 카톨릭의 성모송, 대영광송, 불교의 반야심경, 천수경, 능엄경, 천도교의 시천주 등 그 밖에 도교나 탄트라에서 송주(誦呪)하는 수많은 주문들은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추구하는 수행법의 일종이다.
따라서 주문이란 의미 속엔 "신의 권능과 영성을 받아들여 깨달음과 완성을 추구한다" 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동서양의 공통된 인식이다. 동양과 서양 모두, 주문의 쓰임새 또한 언어나 생활 속에 광범위하게 베어있으며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다. 주문은 곧 진리의 말씀[眞言]
진언은 곧 진리의 말씀이며 진리로부터 온 성구(聖句)이다. 또 신들이 인간에게 들려 준 생명의 언어이자 깨달음의 언어이다. 신비주의적인 술어(述語)가 아니라 진리와 지혜가 농축된 모든 소리에 대한 총지(總持)이다. 주문은 진언의 두루 갖춤을 의미하며 지혜(智慧)를 얻기 위한 총지문(總持門)이기도 하다. 주문엔 크게 3가지 뜻이 있다.
첫째, 일체 악(惡)을 일어나지 않게 한다.
둘째, 선(善)을 사라지지 않게 한다.
셋째, 선(善)을 잡아 일체의 악(惡)을 없애고 청정한 진리의 세계를 깨닫게 해준다. 그러므로 주문은 진리의 세계를 열어내는 "참된 말" 이자 "도언(道言)" 인 것이다. 예를 들어 불가(佛家)의 팔만사천법문이 진언으로 되어 있어 부처님의 본심을 드러내듯 진언(주문)은 헤아릴 수 없는 가르침의 백미(白米)이다. 왜냐하면 소리 그것은 "진리의 음성(voice of Truth)" 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것만이 우리를 완전하게 해줄 수 있듯 진언(주문)은 완전한 언어이며 우리를 모순 없는 세계로 안내해 주는 훌륭한 반려자(伴侶者)이다.
라. 신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주문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미묘한 글자들로 이루어진 매우 특별한 언어이다. 비코(Giambattista Vico)는 그런 언어들을 "신성한 글자" 라 말했으며 옛 슈메르인이나 바빌로니아 인들은 주문을 "신통력을 가진 단어들" 이라 칭했다. 또 고대 신비주의학파들은 "잃어버린 말씀", "잃어버린 화음" 이라 했으며 베다에선 "Holy Nad", 이슬람 현자들은 "카르마(Karma)" 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정의는 주문은 신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바꾼 매우 특별한 힘을 보유한 "힘의 말씀" 이라는 것이다. 즉 형이상학(비물질계)을 형이하학(물질계)으로 끌어내린 중간자라 할 수 있다. 신들의 성언(聖言)을 인간의 성언(聖言)으로 정립시킨 것이다. 주문은 위대한 성자들에 의해 깊은 명상상태에서 발견된 음절이나 단어 또는 단어들의 집합체들이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런 언어들이 아니다. 깊은 초의식 상태에서 내부로부터 수신된 만트라의 음(音)들은 구도자들을 점점 더 깊이 이끌어 완전한 고요의 상태에 도달하게 만든다. (『히말라야 성자들』中)
이렇게 초의식 상태에서 재건된 주문은 특별한 힘을 보유하게 된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갇힌 요정처럼 신(神)은 주문에 응감하며 누군가가 마음을 한데 모아 부르기만 하면 그 즉시 모습을 현실계에 드러내 보인다. 단순히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현화(現化)할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쉽게 신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일찍이 없었다. 신과의 만남은 곧 자기 자신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왜냐 하면 자기 자신이 곧 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언어는 자기 자신 안에 또다른 신의 이미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 포박자(抱朴子)에
“밤길을 걷지 않고선 밤길을 걷는 사람의 일을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섣부르게 어림짐작하여 속단하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