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의 식스센스] 현생은 이미 프로그램 되어있다! 영가는 내생에서 받을 전생 죄의 불이익 정도를 선택 가능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좋은 일이 생겼다거나 혹은 나쁜 일이 생기면 '전생' 얘기를 꺼내게 된다. 전생에 복을 많이 쌓아 경사가 났다거나, 죄를 지어서 벌을 받고 있다는 식이다. 삶이 고되고 힘들수록 전생 타령은 더 심해진다. 무조건 전생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의 삶이 고되고 힘드니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전생을 알고 싶어하는 것. 물론 현재의 고통이 전생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전생의 고통을 만든 사람도, 현생의 고통을 만든 사람도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 영계로 가면 전생과 내생의 과도기적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 과도기에는, 전생을 잘 살고 잘 죽은 사람들에게 우선 혜택이 돌아간다. 즉 내생을 잘 살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불이익이 돌아간다. 불이익의 정도와 강도 중 어떤 부분은 본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전생에 심한 바람둥이였다면 내생에는 반대의 성(性)으로 태어나 자신이 울린 이성들의 고통을 그대로 받는다. 내생의 자신을 위해 스스로 큰 함정을 파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전생에는 공부를 게을리했던 사람이 이를 크게 후회했다면, 내생에서 대학 입시에 여러 차례 떨어지게끔 만든다. 재수, 삼수를 하면서 배움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깨달은 뒤 어렵게 합격함으로써 다른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학업에 매진할 수 있게 프로그램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정 부분 영혼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했다 해도 이는 내생의 자신을 위한 것이며, 영혼의 성숙을 위한 과정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 본인이 겪고 있는 고통 역시 어쩌면 자신이 직접 선택한 과정일 지 모른다.
죄책감과 충격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그녀는 '너 때문에 죽었다'는 주변의 원망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고, 어디선가 죽은 남자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늘 불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를 따라 온 남자 친구 영가들의 호소에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젊은 나이에 친구를 위해 좋은 일을 하려다 비명횡사를 했으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비록 한 번의 구명시식은 있었으나 그들의 한이 너무 강해, 한 차례 더 영혼을 달래주는 시간을 가져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사고는 이미 전생의 그들이 선택한 것. 그들은 전생에 지은 강도 높은 업을 소멸하기 위해 스스로 극단의 프로그램을 짰던 것이다. 그러니 누굴 원망하고 탓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대학 강의도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이 있듯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