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강 저편에서 ‘돌아가라’는 계시를 들었다”
죽음 뒤 세계는 존재하는가. 인간의 영혼은 소멸하는가. 먹고 사느라 바쁜 사람들에겐 부질없는 질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사후세계 체험담을 듣노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이해하자”고 갈파하는 한국죽음학회 최준식 교수의 ‘근사(近死) 체험’ 연구.
세계적인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1944년 초 심근경색으로 의식불명이 됐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목숨을 지탱하며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융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다.
그는 아주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래쪽엔 새파란 빛 가운데 지구가 떠 있고, 거기엔 감청색 바다와 대륙이 보였다. 발 아래 저쪽 먼 곳에 실론 섬이 있고 앞쪽은 인도였다. 시야에 지구 전체가 들어오진 않았지만, 지구의 형체는 확실히 보였다. 그 윤곽은 푸른빛이었다.
그가 방향을 돌리려 하자 뭔가가 시야로 들어왔다. 운석과 같은 새까만 돌덩이가 우주공간을 떠다니고 있었다. 돌덩이 한가운데에는 힌두교 예배당이 있었다. 바위 입구로 들어선 순간, 그의 머릿속에 삶의 단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 모든 사건이 그때껏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왔음을 불현듯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의식을 되찾았다. 혼수상태에 빠진 그를 줄곧 지켜본 간호사는 “의식을 잃은 융이 밝은 빛에 싸여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1944년 우주선 아폴로호(號)가 찍은 지구 사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융은 생사의 기로에서 이미 푸른 색으로 빛나는 지구를 본 것이다.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
세상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현상이 많다. 특히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이들이 털어놓는 ‘죽음의 이미지 체험’이 그렇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융은 새파란 지구를 봤고, 전쟁터의 부상병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죽은 조상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근사(近死) 체험’이라는 특이한 현상을 경험한 사람이 세상에 적지 않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는가. 사후생(死後生)이 있다면 우리는 죽음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먹고 사는 데 급급한 우리 사회에 ‘죽음’의 화두를 던진 인물이 있다. 6월4일 동료 교수 및 전문가 20여 명과 함께 한국죽음학회를 창립한 이화여대 최준식(崔俊植·49) 교수(한국학)다.
“근사 체험(과거엔 ‘임사(臨死) 체험’이라고 표현했으나, 최 교수는 ‘Near Death Experience’를 ‘근사 체험’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한다) 연구를 통해 죽음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자”는 그의 문제 제기는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한국적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듯하다.
“한국 종교계야말로 구조조정 대상 1순위”라며 야멸찬 독설을 퍼붓는 종교학자, ‘전통의 재발견’을 통해 한국미를 재조명한 한국학자…. 이름 앞에 붙는 다양한 타이틀이 말해주듯 그는 한국 사회의 가려운 곳을 찾아내 일침을 놓곤 했다. 그가 새롭게 천착한 ‘근사 체험을 통한 죽음 연구’는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끈다.
6월8일 이화여대 인문관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재킷을 멋스럽게 걸친, 자유분방해 보이는 첫인상의 최 교수는 인사를 나누면서 대뜸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한국 UFO 조사분석센터 회원증’이었다.
“나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신비한 현상에 관심이 많아요. UFO도 그런 차원에서 관심을 갖게 된 건데, 최근 사람이 줄어 이 조사분석센터가 없어지고 말았어요. 안타깝죠.”
UFO와 근사 체험을 믿는 학자와의 대화는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신념의 바탕엔 어떤 생각이 깔려 있을까.
-왜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사는 게 지루하고 재미없지 않아요? 어린 시절부터 죽음 뒤의 생에 관심이 많았어요. ‘소년’ 같은 잡지에서 죽음과 전생에 대한 이야기만 골라 읽었지요. 아마 내가 한국에서 죽음과 관련한 책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죽음(死)학회 최준식 교수의 사후세계 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