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수수께끼에 싸여있던 고대 마야문명이 멸망한 원인이 밝혀졌다. 20진법을 사용하고, 마야력과 상형문자를 만들며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던 마야문명의 흥망성쇠를 결정한 것은 엄청난 화산폭발도, 전염병도 아닌 기후변화 때문이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12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와 스위스 연방기술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최근 연구를 통해 수수께끼처럼 사라져버린 마야문명의 쇠퇴 원인을 찾아냈다.
고대 멕시코 및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번성해 인디오 문명을 이룬 마야문명은 300~600년경에 번성, 과테말라에서 벨리즈ㆍ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걸쳐 60개의 도시가 건립됐다. 무려 6~7만명의 마야인들이 살던 이 곳은 그러나 1100년경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쳤다.
국제공동연구팀은 마야문명 발상지인 멕시코 일대 동굴 바닥에서 형성된 석순에서 강수량 데이터를 분석해 마야문명이 자리잡았던 300~1000년간 중앙아메리카의 기후변화가 극심했던 것을 파악했다. 즉 마야문명이 번성했을 당시에는 강수량이 많았으나 그 이후 지독한 가뭄에 시달리며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연구팀의 수장인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환경인류학자 더글라스 케네트는 이에 대해 "마야 문명의 고전시대 초기에는 수천년 수준의 이례적인 습윤기였다"면서 "이 때는 농산물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인구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는 마야문명의 전성기라고 칭할 수 있는 시기와 겹쳤다. BC 440년 ~600년 사이의 기간이었다.
그러나 번성했던 마야문명이 쇠락하기 시작한 것은 660년~1000년 사이였다. 이 시기는 '유례없는 우기'가 '건조기'로 접어들던 때였다.
케네트 박사는 "강우 패턴이 바뀐 이 시기에 접어들여 마야문명에서 왕의 영향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왕권이 곧 신권이었던 마야시대에 지속된 가뭄은 곧 왕권 추락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 시기의 마야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잦은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마야문명의 2000년 역사에서 1020년~1100년 걸친 시기는 최악의 건기가 찾아온 때다. 이 때 마야인들은 자신들이 꽃피웠던 찬란한 문명을 버리고 떠나기 시작했다. 연구에서는 "16세기 당시 스페인이 이 지역을 정복했을 때 내륙의 인구는 90% 감소했으며, 옛 도시와 농경지들은 숲으로 바뀐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나사의 고다드 우주과학연구소(GISS)와 미국 콜롬비아 대학 라몬토, 도허티 지구 연구소 소속 기후과학자 벤자민 아이 쿡은 이 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기후변화의 원인은 마야인 자신에게 있다"면서 '자업자득'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도시와 농지의 확대로 산림벌채가 광범위하게 진행됐기에 토양에서 대기 중으로 증발하는 수분이 감소했으며, 자연 강우 사이클이 차단됐기 때문에 강수량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었다. 특히 이 기간동안 마야에서는 국지적인 건조화에 따라 연간 강수량이 5~15% 감소했는데, 10%의 강수량 감소만도 자연에는 최악의 재해라는 설명이었다.
이와 관련 케네트 박사는 "마야문명의 쇠락요인을 통해 현재 아프리카와 유럽의 기후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지속된 가뭄이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야문명의 결과가 현재의 지구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
다만, 마야문명의 쇠퇴에 대해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환경사회학자 B.L.터너는 "마야문명은 멸망한 것이 아니다"면서 "마야인들은 식량 부족과 끊이지 않는 분쟁으로부터 탈출했다. 마야문명은 내륙을 벗어나 해안생활을 목표로 삼았다. 때문에 교역은 육로에서 해로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즉, "엄청난 지진도, 전염병도, 저주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해안으로 서서히 옮겨갔고, 마야인들이 해안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스페인의 정복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어떤 민족보다 뛰어난 문명을 일궜던 마야는 15세기 무렵부터 스페인의 침략으로 모든 문명이 완전하게 사라지고, 현재는 유적의 일부만이 남아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9일 과학잡지 '사이언스'에도 게재됐다.
shee@heraldcorp.com
"기후변화의 원인은 마야인 자신에게 있다"면서 '자업자득'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도시와 농지의 확대로 산림벌채가 광범위하게 진행됐기에 토양에서 대기 중으로 증발하는 수분이 감소했으며, 자연 강우 사이클이 차단됐기 때문에 강수량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었다. 특히 이 기간동안 마야에서는 국지적인 건조화에 따라 연간 강수량이 5~15% 감소했는데, 10%의 강수량 감소만도 자연에는 최악의 재해라는 설명이었다.
--> 여기에 반론.
기존의 고대문명이 산림벌채를 하면 얼마나 했겠소..?
농경사회인 마야문명에서 산림벌채로 대략 10% 정도의 강수량 감소가 일어났다면. 현재의 대량 벌목현상에선 그 이상의 강수량 감소가
일어났을테고.. 이미 문명은 파괴되고 없어야지..
시간의 지렛대를 생각해보시오.. 아인쉬타인이 말한 그거.. 그 반향의 크기 말이요..
산림벌채로 마야문명이 멸망했다면, 현대문명은 아예 존재 자체가 없는거요.
"현대문명이 시작되면서 이미 자연은 훼손되기 시작했으니..
결과론적으로 보면, 멸망의 끝에 가고도 한참 지난 시점일텐데..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마야인들의 "산림벌채에 의한 문명파괴"는 말이 안되오..
그게 말이 된다면, 산업혁명이 시작됨과 동시에 지구는 "즉시"파멸되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