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중인 것으로 알려진 석가모니 붓다의 초상 - 부루나 존자가 생존의 석가모니를 그린 그림이다.
석가모니는 벼농사를 짓던 동이족 출신이다.
부처님 생존시 10대 제자중에서 설법을 제일 뛰어나게 잘했다는< 부루나 다라미자 >가 직접 그렸다는 초상화가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데 그 초상화를 기준으로 상호를 보게되면 굵은선 의 부드러운 적당한 곱슬 머리에 수염도 적당히 있고 이마나 안면의 선이 아주 서구도 아니고 우리 쪽의 몽골리언 모습에 가까운 티베트인들과 의 중간 형이며 어깨 골격도 넓고 강하며 석굴암의 부처님 정도의 비율의 골격에 인간적인 굴곡이 강한 아주 호남형으로 앞가슴도 적당히 넓게 벌어진 모습 등으로 보아 키도 약 1.87~1m90cm정도로 짐작되는 형상이다.
석가족은 현재 네팔(티벳남부) 포탈라카국 감자대왕의 후예로서 지금의 네팔 타리이지방 카필라국에 정착하였고 코살라국의 주인이 되었으며 카필라국의 수도난다(정반왕)는 마야부인에게서 석가를 낳았다.
영국의 사학자 <빈센트 스미스>에 의하면 석가족은 동쪽에서 이동했으며 몽골리안중에서 한민족을 형성한 고리(고구려)족이 네팔지역에 이동한것으로 추정하는< 석존 몽고인설>을 주장하였다.
마야부인은 석가모니전에 의하면 코리족이며, 정반왕과 마야부인은 같은 종족이라고 했다. 따라서 석가모니의 진정한 모습은 그리이스의 화풍이 들어간 아테네식도 아니고 후에 전통을 이어간 아리안(현재의 이란 및 인도의 종족)계통의 심목고비가 아닌 몽고계 인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현대 네팔에 샤카족이라 하여 석가모니의 후손들이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동쪽에서 이동해 온 고리(고구려)족이라면 당연히 단군조선의 후예임이 명백하다 할 것이다.
석가의 출생 및 사망 시기는 확실치 않다. 20세기의 역사가들은 대체로 그가 기원전 563년 무렵에 태어나 기원전 483년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나, 최근 일부 연구자들은 그가 기원전 410년에서 400년 무렵에 사망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그림은 돈황에서 출토된 석가모니의 초상화 이다. 석가세존의 10대 제자중의 한 사람인 부루나 존자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고 41세때의 모습이라고한다. 지금은 영국박물관 [英國博物館]에서 소장하고 있다. 석가모니는 분명히 몽골로이드의 특징을 갖춘 동이(東夷)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음글은 석가세존의 씨족적 근원을 해설한 논문인데 인터넷에 공개된 바 있는 " 안창범/ 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 " 에서 발췌한 것이다.
...(상략) 불타의 三十二大人相을 보면, 불타는 전신이 황금색이라 하고, 불상을 보아도 전신이 황금색이며, 두상(頭上)에는 우리민족의 고대 풍속인 왕의 상투가 있다. 이를 보아도 석가세존은 우리민족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종래의 통속적인 관념에 의하여 무조건 석가세존은 인도 사람이며, 흑인종으로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불체(佛體)의 황금색은 석가세존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종교적으로 미화하여 우리들 황인종의 심성에 맞게 도색한 것으로 생각하고, 머리의 상투는 새가 새끼를 까고 간 새의 둥우리라는 전설을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나 전설은 근거없는 독단이며, 기록을 보면 석가세존은 우리민족과 같은 단군족이었고 석가세존은 그 후예였다.
종남산(終南山) 도선(道宣)의 {석가씨보(釋迦氏譜)}에 의하면 부처님의 성씨를 구담(瞿曇)·감자(甘蔗)·석가(釋迦)·사이(舍夷)·일종(日種)이라 하였고, 승우(僧祐)의 {석가보(釋迦譜)}에는 좀더 자세히 밝혀 주고 있는데, 구담을 사이라 하고 사이는 외국의 귀성(貴姓)이라 하였다. 감자는 묘족(苗族)의 후예라 하고 석가는 단종 찰제리(檀種刹帝利)라 하였다. 사이의 이(夷)는 동이(東夷)·서이(西夷)의 이(夷)이며, 사이는 외국의 귀성이라 하였으므로 사이는 인도의 원주민도 아니고, 드라비다계(系)도, 아리아계(系)도 아니라 외국에서 인도로 이주한 동이(東夷)나 서이(西夷)의 일파로서 넓게는 알타이족(族)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석가세존은 알타이족이라 할 수 있다. 우리민족도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알타이족이다. 여기에서 석가세존은 넓은 의미에서 우리민족과 같은 황인종이라 할 수 있다.
묘족은 사전에 의하면 옛 몽고계 인종이라 하였다. 영국의 인도 사학자 빈센트 스미스(Vincent Smith)도 석존을 몽고계 인종이라 주장하였다. 우리민족도 몽고계 인종이다.
'몽고'을 서구식으로 발음하면 "몽골리아(Mongolia)"이고, 본토의 발음은 "?고려(Mongolia)"이다. 그 어원을 말하면 [?]은 말(馬)의 고어이며, 고려는 왕건태조가 세운 근세 우리나라의 국명이기도 하지만 상고시대부터 불러오던 우리나라 지역에 대한 이칭(異稱)이다. 즉 '?고려'는 '말고려'란 뜻으로 말을 잘 기르고, 잘 다루며, 잘 타는 고려족이란 뜻이다. 따라서 몽고족은 원래 우리민족의 지류이다. {단군세기}를 보아도 몽고족은 단군조선 제4세 단군 오사구(烏斯丘)의 동생 오사달(烏斯達)의 후손으로서 우리민족의 지류이다. 여기에서 석가세존이 몽고계 인종이라면 곧 우리민족이라 할 수 있다.
단종(檀種)도 단군종족이란 뜻으로서 직접 우리민족을 가리키고, 찰제리(刹帝利)도 {삼국유사}에 신라왕을 찰제리라 하였으므로 우리민족을 가리키며, 일종(日種)은 광명을 숭상하는 태양족이란 뜻인데 우리민족도 광명을 숭상하는 태양족으로서 일종 역시 우리민족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어느 측면에서 보아도 석가세존은 우리민족이다.
더욱이 석가세존의 초상화를 보면, 그 모습이 동양적인 이목구비(耳目口鼻)에 복장이 인도풍(印度風)이 아니라 우리민족 고유의 한복선이다. 이를 보아도 석가세존은 한국사람임에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우리민족은 부처님을 낳은 민족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이 문화인류학 또는 형질인류학 등의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전설이나 추정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의 소론은 불교론사들의 저술인 {석가씨보} 및 {석가보}와 만인이 공인하는 사전에 의한 주장으로 함부로 부정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사실로만 보아도 후대가 선대의 사상을 계승한다고 볼 때, 석가세존은 우리민족의 상대사상인 신선도를 수용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일반상식으로는 석가세존이 우리민족이라면 무엇 때문에 머나먼 인도에까지 갔느냐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신선도의 교리에 의하면 세계인류는 모두 삼신에 의해서 태어난 동포이며 한집안 식구이다. 따라서 인도인의 고민이 곧 우리민족의 고민이며 인도인의 행복이 곧 우리민족의 행복이다. 그런데 인도인은 지금도 브라만·찰제리·바이샤·수드라의 사성계급(四姓階級)으로 시달리고 있듯이 과거에는 더욱 시달렸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 석가세존이 인도로 가게 된 동기가 있고, 인도에 불교가 보급되게 된 동기가 있는 것이다. (하략)
<출처 : 안창범/ 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
...지금으로부터 1851년 전에는 인도에 천축국이란 이름조차 없었다. 불교계의 주장처럼 석가모니(釋迦牟尼)가 기원전 5∼6세기경에 태어났다고 한다면, 그로부터 700여 년쯤 후에 천축국(天竺國)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釋迦牟尼)와 천축국(天竺國)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영문 블로그:
http://www.eastbound88.com/showthread.php/720-Gautama-Buddha-s-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