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이탈한다. 육신을 내려다본다. 어두운 동굴을 지나 빛의 정원에 이른다. 영혼들과 만나 텔레파시로 교감한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일까. 하지만 실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임사체험(臨死體驗·Near-Death Experience)’을 했다는 이들이다. 임사체험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의학적 죽음 직전까지 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은 ‘죽음 너머 세계에 대한 체험’을 말한다. 임사체험은 사실 수천 년 전부터 그 사례가 기록돼 왔다. 하지만 대부분 ‘뜬구름 잡는 얘기’로 치부됐다. 죽음이 늘 궁금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고, 죽은 뒤엔 평화롭고 행복한 곳에 가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빚어낸 미신 정도로만 여겨졌다. 1970년대 중반, 임사체험이 본격적으로 연구 대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의학 기술과 장비가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과학적 접근이 시도됐다. 일본에선 노령화와 뇌사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대부터 임사체험 연구가 본격화했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임사체험 관련 보고도 늘어났다. 임사체험자들의 경험은 놀라울 만큼 비슷했고, 연구는 더 탄력을 받게 됐다. 사후세계가 실제 존재하느냐를 놓고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불로장생’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 임사체험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O₂’는 국내 임사체험자를 섭외해 생생한 얘기를 듣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임사체험자는 3명. 그 가운데 김철민(가명·34·자영업) 씨를 2일 인터뷰했다. 그는 종교도 없고, 사고 직전 크게 병치레를 한 적도 없었다. 그의 체험담엔 임사체험자들이 주장하는 공통적 특징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김 씨는 한사코 “실명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몇몇 주변 사람에게 얘기했더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면서 “가급적 입 밖에 내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말문을 연 김 씨의 얘기를 바탕으로 임사체험 전후와 당시 상황을 정리했다. 2007년 4월 봄기운이 완연한 어느 날. 대학 동창 모임에 가기 위해 서울 명동 거리를 걷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콱 막히는 통증이 왔고 그대로 쓰러졌다. 갑작스럽게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 심장마비가 오면 보통 몇 분 안에 뇌 기능이 멈춘다. 뇌사(腦死) 상태까지 이르진 않더라도 심장마비 환자들은 의학적으로 사망에 가장 가까운 상태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에선 심장마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사체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애틀랜타 세인트조지프병원의 심장전문의 마이클 사봄 박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사체험 연구에 가장 적합한 케이스가 바로 심장마비 환자”라고 밝혔다. 주변 사람들의 신고로 곧 앰뷸런스가 왔고, 나는 인근 병원으로 실려 갔다. 아직도 병원에 실려 가는 상황에 대해선 전혀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의식이 혼미해지던 그 짧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생생하다. 과거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쭉 흘렀다. 아침에 본 딸아이 얼굴이 떠올랐고, 몇 주 전 친구와 술 마시던 기억, 10년도 더 지난 대학입학시험을 보던 장면까지 머리를 스쳐갔다. 연극의 한 막이 내리고 다음 막이 오르는 느낌, 스위치로 머릿속 전원을 껐다 켜는 느낌이랄까. ∴ 미국의 종양학 전문의 제프리 롱 박사는 그의 저서 ‘죽음 그 후’(Evidence of the Afterlife: The Science of Near-Death Experience)에서 임사체험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이런 과거 기억이 사후세계를 설명하는 유력한 근거라고 주장했다. 롱 박사는 “사고로 뇌가 활동을 멈추면 의식 자체가 없어진다. 백지상태처럼 아무런 기억도 없어야 하는데 필름처럼 기억을 생생하게 해낸다면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매우 편안했고 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황홀했다. 그 순간 머리 윗부분을 망치로 두들겨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선 의식이 몸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 상당수 임사체험자가 의식이 몸 밖으로 나오는 체험, 즉 유체이탈 체험을 했다고 주장한다. 의식이 빠져나오는 부위는 체험자마다 다르지만 머리나 이마 쪽으로 나왔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유체이탈 체험은 꼭 죽음을 앞두고 일어나진 않는다. 생활 중 우연히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수련 또는 명상을 통해 의식적으로 유체이탈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종호 기공수련원’ 원장인 정종호 씨는 후자에 해당한다. 그는 ‘O₂’와의 인터뷰에서 “마음먹으면 언제든 유체이탈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정 씨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부산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독일로 건너가 마찬가지로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학도의 길을 접고 기감학(기를 느끼고 분석하는 학문)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예전부터 몸이 많이 아프고 예민했다”면서 “기감학을 배우고 보니 내 몸이 유독 기에 민감한 스타일이란 걸 알게 됐다. 기를 연구한 뒤 몸도 평안을 찾았다”고 했다. 몇 달 뒤 그는 몸의 미세에너지를 인위적으로 이탈시켜 다시 한 번 유체이탈 체험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통이 찾아왔다. “억지로 에너지를 이탈시켰기 때문이다. 빠진 에너지를 찾아 몸과 다시 맞추는 데 3일 정도 시간이 걸렸다.” 임사체험자의 유체이탈 체험과 그의 경험은 어떻게 다를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임사체험자는 에너지가 대부분 빠져나간 상태지만 나의 체험은 에너지가 60∼70% 빠진 수준이다.” 한편 유체이탈한 사람을 제3자가 목격했다는 사례도 있다. 1971년 영국 런던의 한 의학 전문지에선 남편을 잃은 부인의 14%가 죽은 남편을 한 번 이상 목격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몸에서 한 2∼3m 떠올랐을까. 나를 내려다봤다. 내 몸을 보면서도 마음은 놀랍게도 차분했다. 내 몸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집착은 없었다. 단지 호기심만 존재했다. ‘대체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를 가지고 무얼 하는 걸까.’ ∴ ‘O₂’와 연락이 닿은 다른 임사체험자 임정현(가명·25·대학생) 씨 역시 유체이탈 체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놀이를 하다 물에 빠진 뒤 의식을 잃었고, 잠시 뒤 껍데기처럼 몸만 남겨 두고 ‘내’가 빠져나왔다”고 전했다. 특히 임 씨는 병실을 벗어나 집, 학교, 상가 등 여러 곳을 떠다녔다고 주장했다. “마치 영화 속 슈퍼맨이 된 느낌이었다. 순간이동 하듯 빨리 지나쳤지만 매 순간 기억은 생생했다.” 그러던 중 등 뒤에서 뭔가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봤더니 캄캄한 동굴이 보였고, 그 사이로 밝은 빛이 새 나왔다. 본능적으로 빛을 향했다. 누군가 나를 잡아끄는 느낌도 들었다. 동굴 입구 쪽으로 다가갈수록 빛은 더 밝아졌다.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는 나지막하게 울렸지만 종소리보다 또렷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 이화여대 한국학대학원 최준식 교수는 ‘O₂’와의 통화에서 “임사체험 도중 빛을 보는 건 ‘참된 나’를 발견하는 과정일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종교를 불문하고 사후세계엔 보통 빛이 등장한다. 종교에 따라 그 빛을 초월적인 존재나 다른 영혼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난 그 빛이 자신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상징일 것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동굴을 통과하니 눈부시게 밝은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꽃은 없었지만 잘 꾸며진 정원처럼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우리 전통 민속촌의 한 풍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곳엔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 나랑 친했던 외삼촌도 있었다. 주변 다른 사람들도 왠지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친근했다. 모두들 나와 상관있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들 주위엔 흰색과 황금색 테가 둘러쳐 있었고, 눈부실 만큼 번쩍거렸다. ∴ 제프리 롱 박사는 1998년 비영리연구재단인 임사체험연구재단(www.nderf.org)을 설립해 10여 년 동안 1300여 명의 임사체험자를 조사했다. 그는 조사를 통해 많은 임사체험자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재회’를 공통적으로 겪었다고 주장했다. 임사체험을 연구해온 종교학자 칼 베커 박사 역시 ‘사자(死者)와의 재회’를 임사체험의 주요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저서 ‘죽음의 체험’(Experiences of Death: Research into Near-Death Phenomena)에서 “성모마리아 등 종교적인 인물을 제외하곤 임사체험 도중 모친이나 배우자의 얼굴을 보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형제, 자식, 친구 등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어도 될까.’ 이런 의문을 품는 순간 몸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처음 몸에서 빠져 나올 때보다 더 큰 충격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해졌다. 고통을 느낀 순간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병실 안에 있었다. ∴ 영국 BBC가 2003년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내가 죽은 그날(The Day I Died)’에는 임사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이 가운데 헤더 슬론 씨(주부)는 “18개월 된 아기가 걱정돼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의식이 돌아왔다”고 했다. 가수 겸 작곡가인 팸 레널즈 씨 역시 “돌아가기 싫었지만 임사체험 도중 만난 삼촌이 나를 밀어 육신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했다. 이처럼 임사체험자 가운데 많은 이는 의식이 돌아오기 직전 본인이 의식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고 주장한다. 의식을 찾은 뒤 한동안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중요한 뭔가를 잃은 듯한 허탈감에 식욕도 잃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달라졌다. 뭔지 모를 사명감이 느껴졌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의무감도 들었다. 마음은 사고 이전보다 훨씬 평온해졌다. 요즘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욕심 없이 살다 보면 다시 한 번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지.’ ∴ 임사체험 동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면 의식을 회복한 뒤엔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지 않을까. 오히려 정반대다. 임사체험자들은 체험 이후 걱정이 없어지고,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현재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한다. 임사체험 연구의 선구자이자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레이먼드 무디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일반 임사체험자는 밝고 매력적인 체험을 하는 데 반해 자살미수자들은 보통 ‘어둠의 체험’으로 불리는 적막함을 맛본다. 이런 어둠의 체험을 맛보고 나면 그게 무서워 다시는 자살 시도를 하지 않는다.” 최근 사후세계를 다룬 영화 ‘히어애프터(Hereafter)’란 영화가 주목을 끌었다. 영화를 만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말했다. “영화에서 죽음이란 주제를 다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다.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살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소중한 삶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