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대진국(발해)史의 진실
지난 2002년 월드컵 열기 중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열정적으로 한마음이 된 응원문화를 보여준 대∼한민국 !!!
우리민족의 본성 속에는 하나로 어우러져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 호방한 기마민족의 기질이 내재되어 있다.
〈참고서적〉
홍윤기, 『일본천황은 한국인이다』 (효형출판, 2000)
서병국, 『다시 보는 고구려』 (한국학술정보, 2004) 박선식, 『한민족 대외정벌기』 (청년정신, 2000)
위풍당당 고구려 광개토태왕
[광개토왕비문]에 나오는 임나가라는 대마도를 가리킨다. 이 문구에서 임나는 가라를 특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광개토태왕비문에 기록되기를「영락(永樂) 10년 경자년에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어 신라(新羅)를 구원하게 하였는데, 관병(官兵:고구려군)이 남거성(男居城)으로부터 신라성에 이르기까지 왜(註 응신조왜 군사 지칭)가 가득하였다. 관병(官兵)이 이르자 왜(倭)가 물러가기 시작하였다. 관병이 왜의 자취를 밟고 넘어 급히 쫓아 임나가라에 이르러 성을 치니 성은 귀복 하였다. 十年 庚子敎遣步騎五萬往救新羅從男居城至新羅城倭0其中官軍方至 倭賊退 官兵 跡而越來攻來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城卽歸服」廣開土王碑文.
잊혀진 제국
서기 926년 1월 14일. 해동성국 대진국1)이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에게 멸망한 날이다. 이날을 계기로 우리 민족의 주 활동 공간이 만주대륙에서 한반도로 축소되고, 간도수 실현의 역사 시대가 실질적으로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배달국 이후 우리 민족의 주 활동 무대였던 만주대륙은 대진국 멸망 후 우리 역사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그 땅뿐 아니라 그 얼과 인물들까지도….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제국, 대진국에 대해 알아보자. 당시 서압록하(지금의 요하)를 지키던 진국장군 대중상은 패망한 고구려 유민을 모아 동쪽 동모산에 이르렀다. 고구려의 옛 땅 회복을 자신의 천명이라 여겼던 대중상이 699년 5월 붕어한 뒤, 태자였던 대조영이 뒤를 잇게 된다. 기존 사서에서는 대중상의 붕어 전 해인 698년에 대진국이 건국된 것으로 전부 기록하고 있다. 대진국의 전신인 후고구려를 건국한 것으로 나온다. 국호는 대진(大震), 연호를 천통(天統, 하늘의 법통을 계승한다)이라 하였다. 대조영은 군사 십만을 양성하였는데, 말갈 장수 걸사비우와 거란 장수 이진영과 손을 잡고 이해고의 당 정예군을 천문령에서 격파하였다. 즉 나머지 고구려의 전 영역에서는 활발하게 고구려의 부활을 위한 움직임들이 있었고 그 결정체가 바로 대진국의 건국인 것이다. 669년부터 국제정세는 당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토번의 당 서쪽 국경의 기습, 돌궐의 재건 등은 새로 건국된 대진국에게는 별 어려움 없이 국력을 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대진국의 본격적인 진출은 2대 광종 무황제 때 대장 장문휴의 등주 기습에서 시작된다. 견디다 못한 당현종은 대조영에게 ‘발해군왕’이라는 이름을 내리며 평화협정을 맺는다. 대조영은 ‘발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후세에 사대주의 사학자들이 대진국을 ‘발해’라 쓰면서 지금까지 ‘발해’라 부르고 있는데, 우리는 마땅히‘대진국’이라 불러야 한다. 고구려의 후신, 대진국 『속일본기』에 의하면 대진국의 광종 무황제 대흠무가 일본에 국서를 전할 때 자신을 ‘고려국왕’ 이라 칭한 사실이 나온다. 그리고 일본국이 대진국에 보내는 회답서 또한 대진국을 ‘고려’라 하였으며 대진국의 사신들도 ‘견고려사(遣高麗使)’라 하였다. (復高麗之舊居 有扶餘之遺俗)’ 라는 구절로서 대진국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중국의 사서에도 도처에 대진국과 고구려가 일치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으며, 고구려 건축물과 동일한 형태를 한 대진국의 온돌의 존재와 형태는 대진국이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로 꼽히고 있다.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게 되었다. 이는 고구려 전성기의 1.5배~2배, 후신라의 4~5배, 한반도의 2~3배의 강역으로 칭제건원과 상제님에 대한 천제의식으로 천자국임을 내외에 공표하고 천하의 중심 고구려의 부활임을 내세웠다. 당, 일본, 신라, 거란 등이 두려워하며 복종하였고 주변으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흠송 받았다.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의 흥기는 대진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야율아보기는 정복군주로서 중국대륙으로의 진출을 목표로 삼았다. 유목민족이 갑자기 성장하게 되면 국가유지 비용충당을 위해 중국을 공략하는 것은 상례였고, 후방의 안전을 위해 우리 민족과는 늘 숙명적인 대결을 벌여야 했다. 925년 겨울, 야율아보기는 대진국 원정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대진국 수도 홀한성이 함락되었다. 대진국의 쇠퇴와 멸망 원인은 기록의 미비로 잘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요사(遼史)』의 기록에 따라 내분에 의해 자멸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요사는 전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리고 1990년 일본의 마치다 히로시 교수는 「백두산 화산 폭발과 그 환경적 영향」이란 논문에서 대진국의 멸망이 백두산의 화산폭발 때문이라는 가설을 내세우기도 했다. 주변국가와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압박해 오는 거란군의 침입에 대응을 하였던 것이 밝혀진 만큼 대진국의 멸망에 대해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대진국의 건국주체 세력이 누구인지 분명한 결론이 없다. 중국의 대표적인 사서인 『구당서』에서는 대조영의 출신성분을 고려별종이라 하여 고구려유민으로 말하고 『신당서』에서는 속말말갈이라 하여 귀부된 고구려인으로 잡고 있다. 서로 상반된 기록들은 후대인들에 많은 혼란을 가져왔고 그 정체성마저도 의심받게 만들었다. 『삼국유사』에서는 말갈 발해전이라 하여 말갈을 우리 역사에 편입시키면서 대진국의 건국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즉 말갈을 우리와 전혀 다른 족속이라 여기게 된다면 대진국 건국주체는 이질적으로 변할 수 있지만 말갈인이 우리와 같은 족속인 것이 밝혀진다면 그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말갈(靺鞨)이라는 것은 물길(勿吉), 원래 물가라는 뜻이다. 송하강 강변에서 살던 사람을 말갈족이라 불렀던 것이다. 북부여를 계승한 고주몽의 고구려(BCE 37년 건국)에서 왕건의 고려를 잇는 연결고리로 봐야한다. 그 민족적 계통의식이나 정치적 의미, 인적 구성, 문화적인 일체 감등에서 보면 한민족사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신교문화의 종주를 이룬다. 조선 후기 유득공이 『발해고』 서문에서 삼국시대에 이어 남북국시대를 처음 기술함으로써 대진국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득공은 “고려가 발해사를 편찬하지 않았으니…. 북쪽은 대씨가 차지했으니 곧 발해다. 이것이 남북국이니 남북국사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삼국사기』에서도 대진국의 건국 및 자세한 역사기술은 빠져있다. 『삼국유사』에도 말갈 발해전에서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두만강 북쪽과 압록강 서쪽이 누구의 땅인지 알지 못하게 됐다. 많지 않은 대진국 관련 기록과 그 기록의 애매함으로 대진국의 정체성이 왜곡되어 온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아야 함에도 그 관심은 너무나 일천하다. 후손들의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역사는 역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그 후 20년 만에 너무나 허망하게 멸망하고 말았다. 패망한 고구려 유민의 망국의 한을 딛고, 역사의 황무지 위에 고구려의 부흥을 꿈꾸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칭송을 받은 대진국이 건설되었다. 하지만 그 대진국이 우리 역사에서조차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거기다 지금은 중국의 손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소멸될 위기에 있는 우리의 고대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대조영이 꿈꾸었던 고구려 부흥의 에너지가 우리 내부에도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1998. 박시형,발해사,김일성 종합 대학 ,1979. 송기호 해제,발해사, 이론과 실천,1989. 서병국,발해제국사,서해문집,2005. 송기호,발해정치사연구,일조각,2000. 송기호 역,발해고, 홍익출판사,2000. 안경전 개벽실제상황,대원출판,2006. 이윤섭, 천하의 중심 고구려, 코리아쇼케이스,2004. 임승국,한단고기,정신세계사,1988. 한규철,발해의 대외 관계사 ,신서원,1994. 한규철 외,<발해사의 종합적 고찰>,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2000. [출처]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6.12월호
한민사의 국통맥을 보면, 사실상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 아니라 9천년을 상회하며, 중국사는 오히려 한민족에서 뻗어나간 방계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장대하고 찬란한 배달 조선민족의 역사가 있었건만 우리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식민사학은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되찾기는커녕 축소시키기에만 급급하다. 반면 우리가 되찾아야 할 1만년 역사는 중국이 자기네 역사로 둔갑시켜 복원에 나선 것이다. 참으로 통탄스럽고 어이없는 일이 옛 우리 선조들의 땅에서 대대적으로 자행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외교’라는 이유 때문에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않고 있다. 나라를 팔아먹는 것만 매국이 아니다. 민족의 혼인 역사를 팔아먹는 것은 장기적으로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다. 기존 국사학계에서는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의 근본 틀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채 엄연히 존재하고있는 고조선 2천여 년의 역사와 배달 신시시대 더 나아가, 환인의 환국문명의 실존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중국과 일본은 지금 없는 역사도 만들어 자국의민족위상을 높히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있는 역사도 없다고 부정하고 근거를 제시해도안믿고 무시하니 아! 이 어찌된 일인가! 중국의 계획대로라면 머지않아 중국은 자기네가 세계문명의 뿌리임을 자처하고 나설 것이다. 그들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1만년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인 우리 배달민족이 먼저 깨어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진리로써 진정한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 (道典 5:347:16)
‘고구려의 부활’을 꿈꾸며 돈화(대진국 당시 지명 ‘곤지’) 동모산에 나라를 세운 지 =258년(668~926) 만이다.
이 날은 단순히 한 국가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게 아니다.
대진국 건국과 대조영
서기 668년 9월 21일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의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고 연호를 ‘고구려의 영광을 거듭한다’는 뜻으로 ‘중광重光’이라 하였다.
하지만 『환단고기』 「대진국본기」에 의하면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 그 해 대중상이
제위에 오른 대조영은 홀한성(지금의 상경 용천부)으로 도읍을 옮기고
당시 당은 고구려의 전 영역이 아닌 평양지역과 요동 일대만을 점령하고 있었다.
건국 후 대조영은 돌궐과 신라에 사신을 보내 통교하여 고구려의 부활을 선언하고 고토 회복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발해’는 중국이 주변국을 전부 오랑캐로 하대하는 근성에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불렀을 뿐,
대진국은 대중상이 처음에 나라이름을 ‘후고구려’라 했듯이 고구려의 국통을 이은 나라다.
아울러 『속일본기』는 ‘고려의 영토를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계승하였다
대진국의 황제들 역시 단군조선,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천손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해동성국 대진국, 그리고 멸망
대진국은 발전을 거듭하여 문물이 크게 융성하였고 영토도 고구려의 전영역과 지금의 연해주,
고구려의 국통을 이어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대진국은 9세기 후반 통치력이 크게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진국의 마지막 왕이 전통적인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방비체계를 확고히 하였고,
대진국을 건국한 말갈은 고구려인
대진국에 대한 연구는 아직 황무지나 다름없다. 아직까지 사학계에서는
우리의 대표적인 사서인 『삼국사기』는 신라중심의 편견으로 대진국 부분은 빠져있다.
여기서 말갈이라고 하는 족속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대진국이 사라진 이유
대조영이 세운 대진국은 단군조선을 계승한 해모수의 북부여(BCE 239년 건국)와
그런데도 대진국이 우리 역사에서 다른 왕조에 비해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이유로는 대진국의 국통을 이은 고려(918~1392)가 대진국사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가 이를 편찬하지 않았으니 잘못된 일이다” 라 말했다.
두 번째로는 역사를 되살리고 보존해야 할 우리들의 무관심이다.
우리 역사, 이제는 바로 세우자
서기 7세기 중국 통일제국인 수와 당의 연이은 침입을 격퇴하여 천하의 중심을 선언한 고구려.
이제라도 우리는 감춰진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
[참고문헌]
김운회,대쥬신을 찾아서,해냄,2006. 단학회 연구부 엮음,환단고기,코리언북스,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 역사>,경세원,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