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충남대 철학과 교수) / STB상생방송 <소통의 인문학, 주역> 강사
약력: 충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중국철학 전공, 세부전공 : 주역과 정역). 충남대학교 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역임, 목원대, 배재대, 청운대 외래교수 역임하였고, 현재 충남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 중이다. STB상생방송에서 <주역 계사상·하편> 강의를 완강하였고 현재 <소통의 인문학 주역>을 강의, 방송 중이다.
①위에 있어야 할 산(☶)이 땅 아래에 있는 상으로 가장 낮은 땅을 위로 두어 겸손함을 나타낸다.
②외괘(상괘)인 곤坤(☷)은 땅의 순종을 상징하고 내괘(하괘)인 간艮(☶)은 산과 정지를 상징한다. 마음속으로는 억제할 줄 알고 겉으로는 유순한 것이 겸손의 형상이다.
③14괘(대유大有)의 다음 15번째 괘로 크게 가진 자가 가져야 할 덕목을 겸손함으로 나타낸 것이다. 15수는 5(토土)+10(토土)으로 십오진주十五眞主의 토의 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인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으로 많은 고민을 한다. 더구나 각박한 사회생활에서의 인간관계를 두렵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인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은 자신의 교만한 마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교만은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겸손의 덕목을 생활화하기는 쉽지가 않다. 겸손의 미덕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정말 미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을 자만심으로 외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족한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겸손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상대방을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이다. ????주역』 지산겸괘에서는 “상대방을 높임으로써 내가 빛나게 된다(존이광尊而光).”라고 한다. 또한 “소인小人은 이익을 보지 않으면 권면(알아듣도록 타일러서 힘쓰게 하는 것)이 안 된다.”라고 한다. 교만한 사람은 하늘의 소리를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고 하며,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한다.
이러한 겸손의 미덕과 가치를 자각하고 실천하려는 겸허하고 진실한 마음들은 대인 관계뿐 아니라 사회생활 속에서 어떠한 어려운 일에 직면하더라도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지혜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주역』중풍손괘重風巽卦(䷸) 『대상사大象辭』에서는 하늘에 대한 겸손에 대하여 “겸손은 하늘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니, 군자는 이로써 명命을 거듭해서 일을 행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우리가 겸손을 행하는 것이 천명天命을 실천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도가 철학의 창시자인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였다. 이것은 물은 만물을 생육하게 해주고, 세상의 더러운 것을 다 씻어주며, 가장 낮은 곳에 처해도 묵묵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기 때문이다. 또한 물이란 진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자는 물과 같은 친구를 사귀라고 하고, 불가에서는 물로 번뇌를 씻는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노자는 『도덕경』 66장에서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강과 바다가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계곡의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이 백성 위에 있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말로써 백성의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까닭으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무거워하지 않고 앞에 있어도 백성이 방해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를 추대하고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다투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누구도 그와 다툴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바다가 온갖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낮추기 때문이며, 세상은 겸손한 사람을 추대하며, 겸손은 남과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의 ‘지산겸괘’ 『괘사』에서 “겸손하면 형통하고 군자는 끝이 있다.(겸형謙亨, 군자유종君子有終)”라고 하였다. 이에 공자는 “겸손이 형통한 것은 하늘의 도道가 아래로 내려와서 광명하고, 땅의 도가 낮은 데서 위로 행함이라.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며, 겸손한 데는 더하고, 땅의 도道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며 겸손한 데로 흐르게 하고,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롭게 하며 겸손함에는 복을 주고, 사람의 도道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며 겸손한 것을 좋아하나니, 겸손은 상대방을 높여서 더불어 빛나며, 나를 낮추어도 사람들이 넘지 아니하니 군자의 마침이니라.”라고 하였다. 즉 하늘도 땅도, 귀신도, 사람도 가득 찬 것을 해롭게 하고 겸손함에 복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낮추는 겸손함을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넘어서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다.
세상에 잘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잘난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에 자기 스스로 무릎을 꿇고 세상의 짐을 말없이 지고 가는 겸손한 사람은 매우 적다. 만약에 사회 지도층에 계신 분들이 겸손하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겠는가? 그러한 미담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많은 경전에서 겸손에 대하여 수없이 언급하고 있다.
『소학집주』 「효행」편에서는 “사람의 덕행은 겸손과 사양이 제일이다.”라고 하여, 겸손의 미덕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덕목이라고 말한다. 또한 겸손의 미덕을 실천함에 대하여 「가언嘉言」 편에서는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 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 마지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이 구절들은 우리 모두가 겸손을 실천하는 데 얼마나 인색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구약성서』 「잠언」 29:23에서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라고 하였다. 우리가 비단 복福을 받기 위해서 겸손하는 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다. 진정으로 나를 낮추고 겸손함으로써 복福를 얻는 것이다. 또한 「잠언」 18:12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라고 하였다. 이것은 편안함에 안주하거나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않고 늘 겸손함으로써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고 존귀함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전의 내용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겸손의 가치와 의미를 잘 알면서도 실제 생활에서 겸손을 실천하는 데 주저하고, 순간순간 교만하고 인색한 이기적 마음을 내보이게 된다.
우리는 내가 행복하고 나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 겸손의 의미에 대해서 진정으로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겸손을 신념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주역』 「계사상」 12장에서는 겸손의 미덕을 자각하고 신념화하기 위해서 우선 “성현들의 말씀을 숭상하고 이것을 믿고 순종하고 따를 것을 생각하면 하늘이 도와 길하지 아니함이 없다.”라고 말한다. 겸손을 자각하고 신념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늘도, 땅도, 귀신, 사람들도 좋아하는 겸손이 일상화된다면 우리는 필연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풍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성현들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6효: 명겸鳴謙(겸손한 체하는 것은 겸손함이 되지 못하니 자신의 마음을 반성하라)
5효: 침벌侵伐(겸손하게 교만함과 오만함을 친다)
4효: 휘겸撝謙(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우면서도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는다)
3효: 노겸勞謙(수고로워도 자랑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겸손하다)
2효: 명겸鳴謙(겸손하다는 명성이 널리 울려 퍼진다)
1효: 겸겸謙謙(겸손하고 겸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