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대륙,아틀란티스의 증거
만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 주제에 접근한다면,
과거 대서양에 거대한 대륙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해
반증보다는 더 많은 긍정적 증거를 찾게 될 것이다.
거의 2400년 전에
플라톤은 아틀란티스의 위치가
<헤라클레스 기둥이 있는 해협의 서쪽>이라고
묘사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현재의 지브롤터 해협이다.
그가 말하기를,
“아틀란티스는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한 것보다 더 크며 그것은 다른 섬들에 맞닿아 있었고,
그 섬들로부터 진짜 대양으로 둘러싸여 있는 반대쪽 대륙(아틀란티스)으로 갈 수 있다.
말하자면 헤라클레스의 기둥 안에 있는 이 바다(지중해)는
단지 좁은 입구를 지닌 항구에 불과하지만 서쪽에 있는 바다는 진짜 대양이며,
그것으로 둘러싸인 땅은 가장 진실한 의미에서 대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또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것은 아틀란티스라고 불렸으며 거대하고 경이로운 제국의 심장이었다.
아틀란티스의 지배는 그 대륙뿐만 아니라 모든 섬과 다른 곳들에도 미쳤다.”
“지진에 의해 가라앉은 다음부터
아틀란티스는 이 곳에서 대양으로 항해하려는 항해자에게 건널 수 없는 진흙의 장벽이 되었다.”
역사가들은 고대인들이 수천년 동안
대서양을 얕고, 진흙 투성이며, 어두운 바다로 알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에드가 케이시는 명상을 통해
아틀란티스가
세 번의 광범위한 대이변에 의해 부분적으로 무너지다가
결국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이변은
대략 기원 전 1만년에 발생했다고 했는데,
이 시기는 플라톤이 마지막 파괴의 시기로 분명히 언급했던 때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대륙이 바다 아래로 사라져서
만 이천(12,000)년 동안이나 완전히 잊혀진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은가?
지질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륙이나 섬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솟아오르고 가라앉는 끊임없는 변화를 겪어왔다고 말한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의 해안들은 최근 몇 천년 사이에 수백 피트나 솟아올랐다.
시실리가 지금은 해발 고도 3천 피트에 위치해 있지만 한 때는 대양의 바닥이었다.
펜실베니아의 석탄 퇴적물은
그 지역이 적어도 23번 수면 아래위로 융기와 침몰을 반복했음을 시사해준다.
현대에 들어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주었던 지진이 2백년 전 포르투칼의 리스본에서 발생했다.
(포르투칼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동쪽 해안과 가깝다).
그 지진으로 6분 이내에 6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대리석으로 된 선창으로 모여들었는데 ,
그 선창이 갑자기 해수면 아래로 6백 피트 지점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사람들과 함께 부근에 정박 중이던 많은 배들도 가라앉았는데 단 하나의 파편도 떠오르지 않았다.
동시에 모로코 마을의 땅이 갈라져 그곳 주민 만 명을 삼켜 버렸다.
격렬한 화산 폭발이 아조레스 제도와 서인도 제도에서 일어났는데,
아조레스 제도는 과거 아틀란티스 대륙의 산 정상이었던 곳이라고 추측되며
서인도 제도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서쪽 끝이었다.
현재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이
1902년에 일어난 마르티니크섬(카리브해에 위치해 있음)의 펠레산의 화산 폭발을 기억하고 있다.
그 화산 폭발로 인해 수도(생피에르)에 살던 3만 명 전원이 채 1분도 되지 않는 순간에 몰살했다.
1976년에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지진도 아주 참혹한 것이었다.
거의 40년 전 에드가 케이시는
1968년이나 1969년에 아틀란티스의 일부가
비미니해역에서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난 수년동안
탐험가와 지질학자들이 그 해역 바다 밑에서
벽이나 건물처럼 보이는 구조물을 발견했다.
1998년 아조레스 제도의 북쪽에서 끊어진 해저 케이블을 수선 중이던 프랑스 배가
해저 약 3천 미터 깊이에서 유리질의 화산암 조각을 발견했다.
화산암은 오직 대기 중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인데
용암이 물 속에서 굳게 되면 수정 구조를 갖게 된다.
그 화산암 조각(파리 박물관 소장)을 조사한 과학자들은
화산암이 분해되는데 15,000년이 걸리므로
그 지역이 15,000년 이전의 시기에 해면 위에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대서양에 존재했던 사라진 대륙에 대한 더 많은 증거가
콜롬비아 대학의 모리스 어윙 교수가
1949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들어있다.
어윙 교수는 탁월한 지질학자로서
대서양 탐사 특히 대서양 한 가운데에 있는
해저 산등성이 일대를 탐사했다.
그가 한 많은 발견 중에 하나는 5,600m 깊이의 해저에서 끌어올린 선사시대의 해변의 모래였다.
그리고 그 지역은 육지로부터 거의 2,000㎞ 떨어진 곳이었다.
모래는 오직 지표면에서만 형성되기 때문에 어윙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당시는 지상에 있던 그 땅이 3~4천m 깊이의 해저에 가라앉았거나
아니면 한 때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3~4천m 낮았음이 틀림없다.”
그 곳은 예전에는 바다 밑이 아니었으며,
대륙이동설도 대양 한 가운데에 있는 해변의 모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해저 산맥, 해저 분지, 화산재의 여러 겹의 퇴적층이 대양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어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1,000m 해저에서 대서양의 과거 역사를 말해주는 흥미로운 암석을 발견했다.
대륙의 일부였던 것이 틀림없는 그런 종류의 화강암과 퇴적암이었다.
우리가 이 곳에서 끌어올린 모든 암석들은 둥그스름했고 깊게 긁힌 자국이 있거나 줄무늬가 있었다.
우리는 또한 덜 굳은 이암을 발견했는데
그것들이 어떻게 이 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 더 연구해서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다.”
허드슨강이
뉴욕항의 입구에서 대륙붕 쪽으로 190㎞에 이르는 협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욱이 그 협곡은 깊은 바다 속으로 수백 킬로미터나 더 연장되어 있었다.
어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일 이 협곡들이 건조한 땅에서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북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지방의 높이가 한 때는 현재보다 3,000m 이상 더 높았다가 그 이후에
가라앉았거나, 아니면 해수면이 지금보다 3,000m 아래 쪽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이것은 선사시대의 대이변으로 인해
광대한 육지가 바다에 잠겼고 그에 비례하여 일부 지역이 융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지질학자들은
물 속에 잠긴 동굴을 증거로 버뮤다의 해수면이 한 때는 지금보다 18~30m 낮았었다고 말한다.
미 대륙의 식물과 동물의 분포도
대서양에 한 때 거대한 대륙이 존재했었다고
무언의 증언을 하고 있다.
아마 가장 인상적인 증거는
씨가 없고, 꺾꽂이로도 번식시킬 수 없는
바나나일 것이다.
바나나가 씨 없는 품종으로 개량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주의 깊게 재배되어야 했으며,
주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온대지방에서는 바나나의 뿌리가 살지 못한다.
그래서 바나나의 경작이 아틀란티스에서 시작되었고,
거기서부터 동서로 인접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최근 화석을 통한 과학적 발견은 미대륙에서 말(馬)이 유래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정복자들이 16세기에 미대륙으로 말을 들여올 때까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알지 못했다.
야생말들이 고대에는 이어져 있던 육지를 통해서,
아틀란티스에서 유럽과 북아프리카로 건너가지 않았을까?
선사시대의 북미대륙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고래의 뼈가 해수면보다 150~180m 높은 지역인
미시간, 뉴햄프셔, 몬트리얼 등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 북쪽에서 발견된 야자나무의 흔적은
이 지역이 한 때는 열대지방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알라스카에 묻혀있는 고대의 산호도 이 지역이 한 때는 열대지방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른 많은 예들이
이그나티우스 도넬리가 1882년에 첫 출판하고 1949년에 이거턴 사이크스에 의해 개정된
"아틀란티스 대홍수 이전의 세계"란 책에 열거되어 있다.
도넬리의 책은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고대이집트의 문화와 스페인 정복자들이 관찰한 중남미 인디언 문화 사이의
현저한 유사성을 들어 이것을 아틀란티스의 증거로 삼았다.
이 두 지역은 많은 도시의 이름들이 거의 유사했으며
높은 피라미드가 건설되었고, 대홍수에 대한 전설이 있었으며,
1년이 365일로 된 역법이 발달했고, 종교적 건축물에 십자가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아틀란티스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들로서
아틀란티스로부터 동서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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