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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동양예언
선가의 그림 '십우도'


선가의 그림 '십우도'

불가(佛家)에서는 오래 전부터 ‘소’를 진리의 상징으로 보고

심법전수의 수단으로 삼았다.

절마다 ‘소를 찾는 그림(尋牛圖)’을 벽에 둘러가며 그려 붙인 것이 그것이다.

최초로 심우도를 그렸던 송나라때의 곽암선사는
화엄경이 말하는 미륵불(彌勒佛)의 출세를 상징화하여 그렸다.
그러나 심법(心法)을 닦는 것이 본 업이 되다보니
현재 불교의 심우(尋牛)는 미래불(未來佛-미륵불)과 관계없는 심우(心牛)가 되고 말았다.

왜 소를 찾아야 하는가?

우리가 찾는 ‘소’는
대개벽의 정신(精神)을 소유하여 천지의 질서를 바로잡는 진리(眞理)의 주체(主體)이다.
개벽의 열쇠, 생명의 활방(活方)을 가진 절대자이다.

이를 우리나라의 예언용어[秘訣]에서는
‘소의 성품(性稟)을 가진 진인’이라는 뜻으로 우성진인(牛性眞人)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진인(眞人)은 도대체 어떠한 경지를 표현하는 말일까?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의 진인(眞人)은 철인(哲人), 성인(聖人), 불타(佛陀) 등을 뛰어넘는신성(神聖)의 반열을 뜻하며 조화권능의 영역을 아우른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정신사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이 진인(眞人)의 출세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것이 비결 곳곳에 예정된 미래로 자리잡고 있다.


결국 선가의 그림 '십우도'의 참뜻은 미륵부처님을 찾아야 산다는 것이다.



심우(尋牛)











첫번째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심우(尋牛)의 의미는 소를 찾는다는 것으로

여기서 소는 곧 내 마음,
나 자신 또는 어떤 목표를 말한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것,
즉 우리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의 본성을 잊고 수많은 유혹 속에서
소의 발자취를 잃어 버린 것이다.



견적(見跡)











두번째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견적(見跡)이란 흔적을 보았다는 것으로
소의 발자국을 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승들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풀밭에도,
마을에서 먼 깊은 산 속에도 소 발자국이 있다.

마치 하나의 쇠붙이에서 여러가지 기구가 나오듯이
수많은 존재가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짐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견우(見牛)

세번째
동자승이 소의 꼬리를 발견하는 그림이다.

견우(見牛)란 소를 보았다는 것으로

우리의 감각 작용에 몰입하면
마음의 움직임을 뚜렷이 느낄 수 있으며,

우리는 소의 꼬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득우(得牛)

네번째
득우(得牛), 즉 '소를 얻다' 이니,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갈 길을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



목우(牧牛)









다섯번째
동자승이 소에게 꼬뚜레를 꿰어 끌고 가고 있는
모습으로 이제 우리는 마음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랜동안의 습관으로 제멋대로인 마음을

고행과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길들여 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소를 기른다는 의미로
목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또 이 소가 어떤 진흙탕,
어떤 삼독(三毒)과 유혹 속에 빠질지 모른다.

길을 잘 들이면 소도 점잖아질 것이다.
그때에는 고삐를 풀어줘도 주인을 잘 따를 것이다.



기우귀가(騎牛歸家)




여섯번째
동자승이 소에 올라타고 피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소를 잡아서 채찍과 고삐를 달고,

드디어 그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투쟁은 끝났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아니 본래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망우재인(忘牛在人)

일곱번째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망우재인,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이제 때가 왔으니
우리는 채찍과 고삐를 다 내버리고,
초가집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인우구망(人牛俱忘)
















인우구망,
사람도 소도 완전히 잊었다.

모든 것이 무(無) 속으로 사라졌다.

무(無)는 바로 한계가 없음이요,
모든 편견과 벽이 사라진 자리이다.

하늘은 너무나 광대하며
어떤 메세지도 닿을 수 없다.
의심, 분별, 차별은 지혜속에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수많은 스승들의 발자취가 있으며,
범용한 것은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열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깨달음 같은 것은 찾지 않는다.
또한 나에게 깨닫지 못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어떠한 상태에도 머물지 않아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다.




반본환원(返本還源)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

진리는 맑디 맑습니다.

고요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 형상들을 바라 본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어떠한 꾸밈도, 성형(成形)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근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또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참된 집에 살게 되어
그 무엇도 꺼릴 것이 없는 소중한 나를 찾았다.




입전수수(入전垂手)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

옷은 누더기, 때가 찌들어도
언제나 지복으로 넘쳐 흐른다.

술병을 차고 시장바닥으로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온다.

술집과 시장으로 가니,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

도(道)를 세상에 돌리니,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이 그림의 포대화상이 누구인가?

십우도를 그린 곽암선사에 의하면
바로 이 포대를 짊어진 화상이 미륵부처님이다

결국 십우도는 저자거리로 나서는
미륵부처를 찾아야 산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조회 수 :
237
등록일 :
2011.05.06
05: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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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ssionsos.kr/xe/b19/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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