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엔 서당이나 향교에서 학동들이 천자문(千字文)을 떼고 나면, ‘계몽편(啓蒙篇)’이나 ‘동몽선습(童蒙先習)’을 가르쳤다. ‘계몽편(啓蒙篇)’ 말미에 '구용(九容)', 즉 '아홉 가지 올바른 몸가짐'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예전엔 서당에서 아이들이 배우던 것이지만, 기본을 상실한 오늘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다시 새길 말이다. 오늘의 상황에 비춰 구용(九容)을 살펴보자.
1. 족용중(足容重). 발을 무겁게 하라! 처신을 가볍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발을 디뎌야 할 곳과 디디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할 줄 알라는 것이다.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려야 한다. 함부로 발길질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발로 차고 싸우는 일은 더욱 삼가고 삼가야 할 일이다.
2. 수용공(手容恭). 손을 공손히 하라! 인간은 손을 쓰는 존재이다. 그런데 손이 잘못 쓰이면 성희롱도 되고 뇌물수수도 되지만, 손을 제대로 쓰면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된다. 은막의 여왕이자 세기의 연인이었던 오드리 헵번이 말년에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돌보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손이 두 개인 까닭은 한 손으론 자신을 돕고, 다른 한 손으론 타인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3. 목용단(目容端). 눈을 단정히 하라! 단정한 눈에는 세상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다. 1992년 등소평은 노구를 이끌고 중국 남부 지방을 순회하며 행한 담화, 즉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이대로의 걸음으로 100년을 가자”고 말했다.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본 것이다. 제대로 볼 줄 알아야 제대로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10년 아니라 5년에 한 번씩 나라의 방향이 바뀌며 '갈 지(之)'자 행보만 하고 있지 않는가 살펴 볼 일이다.
4. 구용지(口容止).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물고기가 입을 잘못 놀려 미끼에 걸리듯 사람도 입을 잘못 놀려 화를 자초하는 법이다. '입 구(口)'자 세 개가 모이면 '품(品)'자가 된다. 자고로 입을 잘 단속하는 것이 품격의 기본이다. 한국의 품격을 낮추는 데 가장 일조하는 집단이 있다면, 단연코 국가의 법을 심의 의결하는 '국회'이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아야 할 일이다.
5. 성용정(聲容靜). 소리를 정숙히 하라!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래서 너도나도 목소리를 키우려다 난장판이 됐다. 자고로 소리 요란한 것 치고 제대로 되는 경우는 없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6. 기용숙(氣容肅). 기운을 엄숙히 하라! 우리는 예외없이 세상 속에서 기(氣) 싸움을 하고 있다. 기(氣) 싸움은 무조건 기운을 뻗친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리더의 기운이 뻗쳐 혼자 설쳐대면 아래는 모두 엎드리고 눈치만 본다. 반대로 리더의 기운이 빠지면 기어 오른다. 그러니 기운은 적절하게 제어돼야 한다. 그게 리더십의 기본이다.
7. 두용직(頭容直). 머리를 곧게 세워라! 지금 우리 주변엔 고개 떨군 사람이 너무나 많다. 일하고 싶지만 일할 곳을 못 찾아 고개 떨군 젊은이들이 많다. 간신히 붙어는 있지만,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고개 떨군 중년들도 많다. 하지만 다시 고개 들어 하늘을 보라. 아직 끝이 아니다. 끝인 듯 보이는 거기가 새 출발점이다.
8. 입용덕(立容德). 서 있는 모습을 덕(德)이 있게 하라! 덕(德)을 갖추고 서 있다는 것은 서 있을 자리와 물러설 자리를 아는 것이다. 진퇴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리를 차고 서 있어도 옹색한 사람이 있고 자리에서 물러나도 당당한 사람이 있는 법이다.
9. 색용장(色容莊). 얼굴 빛을 씩씩하게 하라! 사람들의 얼굴 빛이 어둡다.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경제의 주름살이 펴져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힘들다고 찡그리면 진짜 찌그러진다. 그러니 어렵다고 찡그리지 말고 애써 얼굴 펴고 웃어라. 긍정과 낙관이 부정과 비관을 이기게 해야 한다.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 입력: 2009.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