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만 오면 - 아버지 상제님의 천명을 실천하는 삶 -
-종정님 도훈 (道紀138년 2월 24일 상생구원의 날)-
|
상제님이 밝혀주신 선천 성자들의 구원론의 실체
이 말씀은 인류 문화의 국지적인 일면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선후천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천지 이법을 바탕으로 인간 역사의 핵심 문제를 지적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즉,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이 선천 성자들 누구도 언급하지 못한 진리의 기본 주제를 직접, 너무도 쉽고 간결한 언어로 정리해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특히 한평생 기도 생활을 해 온, 구도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너무도 큰 의미를 심어줍니다. 동서양 인류의 종교 역사의 지평을 확대해서 보면, 우리 인류에게 구원에 대하여 이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전해 주는 말씀이 흔치 않습니다.
그러면 1절부터 말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천 년 기독교 역사의 아버지 하나님
예수가 말한 아버지 하나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린다.”
상제님은 지금 1절과 2절에서 동서의 2대 종교를 정리하고 계십니다. 서양 기독교와 동양 불교의 구원론의 최종 결론을 그들을 내려 보내신 하나님이 지상에 인간으로 강세하셔서 직접 정리를 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즉, ‘너희 들이 기독교를 알려면 예수 재림설의 실체를 알고, 불교의 구원론을 알려면 미륵불 출세의 실상에 대해서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먼저 1절을 볼까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니” 여기서 예수 재림 문제가 나옵니다. 예수 재림이란 기독교 구원론의 총결론으로서‘심판의 그날, 우리 주님께서 천사장의 나팔 소리를 들으시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는 주님이 오실 때 그 영광 속으로 하늘에 들어 올려져서 천국으로 가고, 믿 지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이 휴거설이 바로 기독교 2천년의 종말 신앙 역사에서 구원론의 총 결론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본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He has sent me). (요한복음 7:28~29)
예수는 스스로를‘하느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人子’이라 하였을 뿐,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말한 구절이 성경에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알고 보면 예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 우주는 그 중심에 온 하늘땅을 다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 그 아버지를 증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는 지상에 건설되는 아버지 하나님의 나 라, 성부 하나님이 지배하는 지상천국시대를 선포하러 온 것입니다.
또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신자들에게 세례를 줄 때, 예수가 다가가서 “나에게도 세례를 주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예수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올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옵니다. 그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소리가 울려옵니 다.(마태복음 3:13~17)
1906년에 출판된 <국한문 신약전서>를 보면 예수에 대하여‘上帝의 子예수그리스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라는 겁니다. 이것을 누가 정확히 봤냐 하면 예수의 수석제자인 베드로입니다.
어느 날 예수가 제자들 에게“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묻자 베드로가“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 니다.”(마태복음 16:15~16) 하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베드로가 종통 계승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석가모니가 연꽃 한 송이를 말없이 들어 보이자 빙그레 웃음으로 대답한 가섭에게 종통을 전수한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는 분명히‘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결론은 자신을 내려 보내신 아버지가 오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건설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왕국[The Kingdom of God] 지상천국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입니다.
이에 대하여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백성들에게“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마태복음3:2)註) 고 선언을 합니다. 기독교의 주제는 이 한 말씀에 압축되어 있고, 여기서 출발을 합니다.
왜 진실이 왜곡된 것일까?
기독교는 2천 년 전부터‘하나님의 나라가 손에 닿을 듯이 가까웠다[the kingdom of God is at hand]’고 했습니다. 2천 년이라는 세월은 인간의 세대로 보면 약 70세대의 긴 세월입니다. 그러나 도의 세계, 대우주를 다스리시는 조화주 하나님의 세계에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죠. 천국이 가까웠나니 회개하라! 하나님의 왕국, 천국이 임박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이룬다는 것인가요? 예수를 내려 보낸 하나님 아버지가 직접 계시를 해 주신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기록된 문서가 바로 소위 묵시록이라 하는「요한계시록」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어떤 내용이 있습니까?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백 살이 넘게 장수하며 기도를 가장 사무치게 한 이가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로마에 전도하다 혹독한 고문을 받고 밧모섬에 귀양을 갔습니다. 이곳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간절한 기도를 합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계시는 천상 궁전에 불려 올라가 아버지의 백보좌 앞에서 직접 천명을 받으며 앞으로 오는 가을 대개벽에 대해 한 소식을 듣 게 됩니다.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And I saw a great white throne, and him that sat on it, from whose face the earth and the heaven fled away; and there was found no place for them. (요한계시록 20:11)
또 내가 새 하늘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And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were passed away; and there was no more sea.(계시록 21:1)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하시니라. And he that sat upon the throne said, “Behold, I make all things new.”(계시록 21:5)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이것이 2천 년 전 요한을 통해 선언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개벽 메시지입니다. 요한은 앞으로 하늘과 땅의 질서가 바뀌 는 것과 새 질서로 옮겨 앉은 신천지 위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건설되는 것을 본 것입니다. 가을개벽의 실제상황이 전개될 때, 그 세계를 열어 주시 는‘크고 흰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상제님입니다. 예수가 말한‘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바로 기독교 탄생 이전 수천 년 전부터 동방 신교문화에서 신앙해 온 천상의 호천금궐에 계신 상제님입니다.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님임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 궁궐에서 상제님을 친견한 요한조차도, 개벽 상황을 신교로 잘 받아 쓰다가 계시록의 마지막에 가서는“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 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계시록 22:21) 하고 예수의 재림을 노래 부 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계시만 받았을 뿐, 우주의 통치자로서 하나님, 최고신이신 상제님에 대한 참모습을 구체적으로 선포하지 못한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성서 주석본이 수백 가지임에도 이‘새 하늘 새 땅’ 이라는 말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없어요. 기독교에는 선후천 개벽관의 우주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봄여름은 선천 세상이고 가을겨울은 후천이다. 하나님은 이 우주 1년, 즉 12만9천6백년을 한 주기로 대자연을 무대로 삼아 인간 농사를 지으신다. 우주는 약 13만 년을 한 주기로 순환 무궁하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이 천지 창조의 원 설계도, ‘우주 1년 선후천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이 가을철을 맞아 지상에 직접 오셔서 건설하시는 후천 조화선경 낙원의 인류 구원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재림만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떤 근거로 예수 재림설을 2천 년 동안 확신하고 있으며, 가톨릭과 개신교를 떠나서 모든 신자들이 하나같이 예수 재림을 그토록 믿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아버지가 오셔도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인간으로 오시는 아버지를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아버지 하나님이 138년 전에 인간으로 오셨어!”하면, “아니,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으로 오시냐? 그럼 인간이지 하나님이냐?”라고 반문합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아버지 하나님은 인간으로 오실 수 없는 분’이라고 완전히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는 성령적인 존재이며 또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때의 하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그 하나님은 초월적 하나님이죠. 이 우주를 창조하고 이를 초월해 있는 절대자입니다. 그런 절대자 하나님은 영원히 인간으로 오실 수 없고 오직 하나뿐인 외아들을 보내 인간 구원사업을 이루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백보좌 하나님 아버지의 강세로 성취되는 신천지 개벽과 아들의 재림 사건이 모순되는 믿음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대표적인 예화 하나를 들어보겠어요.
지금부터 한 20년 전에 광주도장에서 강연회를 할 때 겪은 이야기입니다. 상제님 진리를 전해주고 나니까 뒤에 있던 어떤 노신사 둘이서 함께 일어 나 힘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아니, 아들이 오는 게 아니고 아버지가 직접 오신다고 했으면 그렇게 똑 부러지게 얘기를 했어야지. 왜 그렇게 구체적인 말씀을 하나도 안 해서 헷갈리게 만들었나요! 우리들이 그동안 모든 걸 다 바쳐서 주님을 위해 한 생애를 보내다가, 이제는 늙어서 여생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상제님 이 진정 아버지로 오신 참 하나님이시라면 과거에 아버지가 오셔서 새 세상을 개벽해주신다고 이런 한마디 정도는 했어야 되지 않습니까. 왜 헷갈리게 하셨습니까?”그러면서 나한테 막 화풀이를 하는 겁니다.
이런 얘기를 자기들 신앙하는 쪽에 가서 해봐야 받아들일 리도 없고 사탄 들린 것처럼 취급을 하니까 상제님 도문에 와서 답답한 심정을 그렇게 토로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어떤 신인가?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 생기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신앙하는 아버지는 대우주의 주권자, 통치자 하나님이신 상제님이 아니라 여호와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호와는 과연 어떤 신인가 하는 겁니다. 구약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출애굽기 3:6)
이 내용은 상식으로도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이 3박자를 말이죠. 또 에스겔에는“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에스겔 34:30)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두 구절만 봐도 여호와는 이스라엘 족속을 약속의 백성으로 삼아 통치를 하는 유대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본래 아라비아 반도에 뿌리를 둔 유대족의 부족신이자 조상신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원래 전쟁 전문가인 군신軍神입니다. 중동 지방의 족속 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전쟁 신입니다. 시편을 보면“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편 24:8) 라고 찬양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또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하셨느니라.’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라는 구절이 있고, 사무엘상에는‘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사무엘상 6:19)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을 볼진대 여호와는 때에 따라 생명을 무수히 죽이는 전쟁신입니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자기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길을 막는 자는 뱃속에 있는 애까지 다 도륙하라, 멸망을 시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사무엘상 15:3)고.
얼마 전 가톨릭의 차동엽 신부는 <맥으로 읽는 성경>이라는 프로그램에서“모르는 사람들이 구약을 읽어보면‘아니, 이게 무슨 하나님이냐. 제 백성을 위해서 남의 백성을 씨도 안 남기고 뱃속의 애까지 다 쳐 죽이라 하는분이 무슨 하나님이냐.’라고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또 신화의 아버지 조셉 캠벨은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 프로에 서“십계명은‘살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장章에 가면‘가나안 으로 가서 거기에 있는 것은 모두 죽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범주가 구속된 사회의 도그마입니다. 참여와 사랑의 신화는 오로지 무리의 안을 맴돕니다. 밖을 향하면 태도는 표변합니다. <이방인>이라는 말이 드러내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방인과 한솥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이지요.” 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한 책이『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습니다. 오직 내 백성만 위하고 타민족은 적대시하는 살육적인 신관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것입니다. 중동 전역에서 거의 하루걸러 자살 폭탄이 터지고, 서로를 죽이는 참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신이 유일초월신으로 바뀐 역사 과정
이렇듯 여호와는 때로는 인격신으로, 때로는 성령의 불길로 나타나 명령 을 내리고 계시를 해주는 유대민족의 의식 속에 절대자 창조주 역할을 하는 조상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이 기독교 신도들의 마음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창조주 아버지 신앙으로 바뀌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증산 상제님이 지적해주시는 예수 재림의 심각한 문제점이 여기에 있 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옛 약속「구약舊約」과 새로운 약속이라는「신약新約」, 두 가지 경전이 있습니다. 「구약」과「신약」을 비교해보면 신관, 인간관, 아버지관의 체계가 다릅니다. 「구약」의 창세기 첫 문장이‘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구약」첫머리에서는 분명히 본래의 조물주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The Maker]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쭉 나가다가 창세기 2장 4절에 이르면 갑자기‘여호와’가 나옵니다. 그러다가「신약」으로 넘어 가면‘여호와’라는 호칭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고‘아버지(The Father)’로 만 나옵니다. 여호와신이 구약에는 나오지만 신약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아버지가 유대족의 여호와신이라면, 왜 신약에는 단 한 번도 여호와라는 호칭이 안 나오고 그냥 아버지일 뿐일까요? 이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구약의 민족신 신앙에서 원래 우주 만유를 다스리시는 참 하나님 아버지 시대를 여는 신약시대의 인류 보편 신앙문화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관 변화의 신·구약(새로운 약속과 옛 약속) 신앙 역사를 추적 하다보면 지적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고대 민족사의 초기 시대인 모세 오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지금부터 약 4천 년 전(BCE 2000년경) 아브라함의 족속은 수메르제국 내에 있던 갈데아 우르(Ur:도시국가)지역에 살다가註), 강대국들의 잦은 침입과 기근 등으로 우르가 쇠잔해지자 유프라테스 강을 강을 건너 가나안(현재, 팔레스타인 일대)땅으로 이동합니다. 이때부터 아브라함 족속을 헤브루(Hebrew : ‘강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라고 부르게 됩니다.
| 약 3,500(BCE 1,500)년경 전후에 기근이 들자 헤브루족의 일부는 나일강 유역으로 이동을 하여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갑니다. 강제노역을 하며 고통과 절망의 삶을 살던 히브리족은 BCE 1,300년 경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이 때 모세는 민족정신을 하나로 강력하게 묶기 위해, 그들 민족의 하나님인 만군萬軍의 신 여호와와의 계약을 통해‘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10계의 첫 번째 계율)는 유일신 신앙을 선포하게 됩니다. 즉 여호와신이 모세를 통해 시나이 산에서 유대족의 통치자 하나님으로서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이 지속되도록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십계명)을 일러 준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종교역사상 유례가 없는 계약종교인 오늘날의 이스라엘 유대교 역사의 출발점입니다.
그 후 헤브루족은 모세를 이은 여호수와의 인도로 팔레스티나 지역에 정착해 살았는데, BCE 1,000경에는 다윗왕이 흩어지고 분열된 족속을 통일하여 히브리왕국을 건설함으로써 약400여 년 간 번영을 누립니다. 그러나 다윗왕에서 솔로몬왕으로 이어지던 통일왕국은 다시 이스라엘왕국과 유대왕국으로 분열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209년간(BCE 931~BCE 722년) 존속하다가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망하고, 유대왕국은 345년간(BCE 931~BCE 586년) 존속하다가 신흥강국인 바빌로니아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유대왕국을 멸망시킨 바빌로니아왕은 솔로몬궁전과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유대의 지도층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바빌론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유대족은 자괴감에 빠지고 민족정신이 분열되게 됩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유대족의 선지자들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여자가 원죄를 지어서 이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는 원죄론과 유대족 선민의식과 그들 외의 타종교를 우상숭배로 매도하는 극도의 배타적인 사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당시는 유대백성들의 고통과 절망과 분노를 해소시킬 무언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2,500여년(BCE 538년)에 이르러 메소포타미아의 새로운 강자 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바빌로니아는 멸망당합니다. 유대족이 바빌로니아로부터 풀려날 때까지의 약 50년간(BCE 586~538)을 역사에서는 유대족의 바빌론 유수기라고 합니다.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인 예루살 렘으로 귀환시킵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신전을 재건축하도록 재정지원까지 해주고 종교적 자유인으로 만들어줍니다. 바로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을 메시아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메시아로 인식한 페르시아 왕이 신봉하던 종교가 바로 ‘조로아스터교’였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조로아스터교의 메시아사상을 유대교 교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페르시아 왕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이 모든 것은 거룩하신 주님의 은총이시다. 유대민족을 선택하신 여호와만이 전지전능하신 유일신이시다!”하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유대교를 정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첫째, 신은 여호와 한 분뿐이다. 둘째, 유대민족은 신의 선택을 받았다. 셋째, 인류의 종말이 오고 신이 메시아를 보내어 인간을 구원하신다 하는 유대교의 메시아사상, 유일신 신관이 정립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동지역 유대족의 여호와가 인격신에서 초월신으로, 대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신격이 변색되어 버립니다. 신관 자체가 지역신에서 우주의 절대자 신격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상제님 말씀 그대로 여호와신은 본래 중동의 지방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러한 신앙관을 그대로 계승하여 기독교인들은 여호와신을 우주의 조물주로 신앙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여호와신이 원 조물주이고, 창조주이고, 우주의 주관자로서 인간으로 올 수가 없는 초월신입니다. 그 여호와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독생자인 예수를 내보냈으며, 예수는 육화한 하나님으로서 심판의 때가 되면 믿는 사람을 건져 올리기 위해 다시 이 세상에 재림한다는 것이죠.
기독교 삼위일체 신관의 진실
기독교의 신관, 인간론, 구원론의 기본 틀을 구성하는 진리의 핵심, 즉 성삼위일체 신관을 보면 아버지가 계시고 그가 보낸 아들, 그리고 제3위位의 하나님으로 성령이 있습니다. 그들은‘하나님은 하나이신 세 분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구별되는 세 인격 이며, 그 세 인격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시다’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그 본질은 하나이며 현실 사역에서는 세 위격의 하나님으로 나누어져서 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창조를 하시고, 아버지가 보낸 아들은 그 능력과 신성이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동일한 하나님으로서 구원의 사역을 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 구원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기도에 대한 감응과 성취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손길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도 있지만 아버지로부터 온 영, 아들로부터도 오는 영, 즉 성령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서기 313년, 동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시대만 해도 이 삼위일체론은 확고하게 정립된 정통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부聖父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법신法身적인 우주의 주권자로서 천상 궁전의 옥좌에 앉아 실제로 인간과 신들에게 명을 내리며 통치하시는 인격신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오직 만유 생명체의 ‘존재의 근원’으로 계시는 초월자, 절대자, 형이상학의 신과 창조주 신으로 받들고 있지요.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런 아버지 하나님관은 인간 세상에는 영원히 올 수 없는 분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아버지관입니다.
또 한 가지 기독교인들이‘인간 세상에 오시는 참 하나님 아버지’를 영원히 못 찾게 해버린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영지주의靈知主義의식으로 쓰여진 또 다른 한 권의 복음서, 「요한복음」1장에 나오는 이 구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and the Word was with God,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and the Word was God. (요한복음 1:1~3)
기독교인들의 논리를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곧 아버지의 아들 예수(육화한 말씀 : incarnated logos)로 성육신되었으니, 그분은 살아 계신 말씀인 하나님의 현현이요 계시이며 인지되는 모든 현상 세계의 근원이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분명한 임재하심이다.’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가톨릭의 교황이 됐든, 신부가 됐든, 개신교 목사가 됐든, 장로가 됐든,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도 누구를 불러다놓고 물어봐도 한결같은 대답을 합니다.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시고 만유의 근원으로 본래부터 완전자로 계시고, 우리 주 예수님만이 바로 이 아버지가 보내신 유일한 독생자요 구원의 하나님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꼭 다시 오신다.” 고 말입니다.
이러한 여호와 신관이 복잡하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상제님은“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 석가 공자 예수 모두 내가 내려 보낸 성자들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는“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다.”는 말씀을 망각하고 지난 2천년 동안, 예수를 내려 보낸 대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이신 참 하나님 아버지의 강세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예수의 재림을 기다려왔다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유대족은, 예수가 탄압을 받고 죽었다가 하늘로 올라갈 때 분명히“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으로 간다.”고 했는데도 아버지 하나님의 복음을 왜곡하여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아버지 상제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2천년 동안 깊은 고민을 하신 겁니다. 기독교인들이 아버지를 찾으면서 처절하게 기도를 하는데 그 아버지를 전부 유대족의 신 여호와로 알고 있으니 그 기도가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 상제님께 전혀 상달이 안 된단 말입니다. 그것을 쐐기 박기 위해서 2천 년 전에 상제님은 천 상 백보좌에서 사도 요한을 끌어올려 새 하늘 새 땅 신질서를 창조하시는 가을 천지개벽의 실제 상황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오셔서 충청도 금산의 예배당에 가시어 기독교의 잘못된 아버지 신관을 직접 심판을 하셨습니다.
임인(壬寅: 도기 32, 1902)년 가을에 하루는 상제님이 호연이를 데리고 금산의 한 예배당에 가십니다. 그 때 목사가“하느님이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맘 변치 말고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자, 우리 서로 서로 손잡고 함께 믿읍시다.”하고 열 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상제님이 그 설교를 들으시고는 단상으로 나가시 며“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되느니라! 천지만사의 이치란 천지에 모여 사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거늘 네 어찌 중생을 속이느냐! 중생들을 그릇 인도 하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잡지 못하느니라!”하시며 환부역조換父易祖의 큰 죄를 호되게 꾸짖으십니다. 그리고“벼락신장은 어디 있느냐. 속히 벼락 을 치라!”하고 건물이 흔들리도록 큰 음성으로 천상의 벼락 신장한테 벼락 을 때리게 하십니다.(道典5:17~18)
천지의 원 주인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이신 조화주 상제님이 친히 기독교 교당에, 그릇된 아버지 신관의 구원 신앙에 개벽을 때리신 것입니다.
석가불의 미륵불 출세 예고와 불교의 미륵불 왜곡
미륵신앙의 기틀을 다진 진표 율사
증산 상제님은 2절에서“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린다”고 하십니다. 미륵부처님의 출세, 이것이 바로 불교 3천년 신앙의 총 결론입니다. 동방의 미륵불 신앙의 원조는 바로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의 도승 진표입니다. 진표 스님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륵부처님에게서 직접 도통을 받고, 이 땅에 미륵님의 도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신앙의 기틀을 다지신 분 입니다.
진표는 일찍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륵님의 도를 구하다가, 27세 때 서해안에 있는 변산 마천대 백척 절벽인‘부사의방장’에 들어가 일심으로 계법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수기授記를 얻지 못하자, 죽을 결심으로 바위 아래로 몸을 날렸어요. 그때 청의동자가 살며시 나타나 몸을 받아 살려주었습니다. 이에 큰 용기를 얻은 진표 대성사는 21일을 기약하여 서원을 세우고, 돌로 자기 몸을 짓찧으며 힘줄이 끊어지는 고행[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참회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드디어 21일째 되던 날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부처님이 천중을 거느리고 내려오셔서, 진표 대성사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시며“장하도다 대장부여! 네가 이토록 몸을 아끼지 않고 도를 구하다니, 참으로 장하도다!”하고 무수히 칭찬을 하셨습니다. 또“내가 한 손가락을 튕겨서 수미산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네 마음은 불퇴전不退轉이로구나.”곧‘네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움직일 수 없구나.’하시고 징표를 주셨습니다.
진표 대성사가 도통을 하고 우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니, 앞으로 천수백 년 후에 대우주가 개벽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륵부처님께“이 동방 땅에 천주님이신 미륵님이 인간으로 강세하시기를 소자 진표가 간구하옵나이다!”하고 평생을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미륵천주님에게서‘나의 모습 그대로 불상을 세우라’는 천명天命을 받고 미륵불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금산면金山面금산리金山里에 있는 금산사金山寺의 미륵불상입니다.
진표 대성사는 금산사의 미륵전을 세운 후 금강산 발연사와 속리산에 지금의 법주사인 길상사를 세웁니다.
‘미륵불’왜곡의 실감나는 현장
그러면 과연 불교인들은 미륵불 출세에 대해 어떻게 인식을 하고 있을까요?
속리산 법주사를 가보면 불교 3천년 역사에서 미륵님을 왜곡한 가장 생생한 현장을 만나게 됩니다. 법주사 마당에 청동 미륵상이 있는데, 그 미륵상의 기단 아래에 조그마한 석실(용화전)이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벽에 부조를 새겨놨어요. 거기에는 석가모니가 주불이 되어 위엄있게 앉아있고 그 앞에 한 열 일고 여덟 먹은 조그만 동자가 공손하게 예를 갖추고 서있습니다. 그 동자가 바로 미륵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얘기냐 하면, ‘석가모니 당대에 미륵이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가 요절을 하여 도솔천의 보살로 있으면서 서원을 하고 기도를 많이 해서 말법시대에 다시 인간으로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도를 통해 미륵불이 된다. 그 때가 언제냐? 석가모니가 입멸하고 나서 56억 7천만 년 후 이다’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미륵은 본래 석가모니불의 당대 제자였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기의 불교 최고最古경전인『숫타니파타』마지막 장인「피안도품彼岸道品」에도 바바리의 16제자에 관한 이야기註)가 나오지만 수행승 미륵이 미래불이 된다는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팔리어 연구의 권위자인 리스 데이비스Rys Davis는 미래부처님이신 천상 도솔천의 미륵불은 이 수행승 미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미륵사상연구의 대가인 일본의 와타나베 쇼코渡邊照宏도『미륵하생경』, 『미륵대성불경』등 미륵불과 관련된 주요 경전에, 수행승 미륵이 미래불이 된다는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미륵경에 기록된 불교의 총결론
그러면 미륵불의 출세는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일까요?
『법화경法華經』을 보면, ‘내 법이 천 년 정법正法, 또 천 년 상법像法,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천 년 말법末法을 거쳐서 새로운 변화가 온다. 그 때는 다른 분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오는 변혁에 대한 불교의 개벽 소식은『미륵경彌勒經(상생경 · 하생경)』에 그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석가부처는“앞으로 미륵님이 이 세상에 오시며 그 때는 1년 사시가 조화되고 모든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된다.”고 꿈 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자기 아들 라훌라와 수석제자 가섭을 포함한 10대 제자들을 불러 도솔천을 손으로 가리키며 아주 중대한 선언을 합니다. “3천 년 말법이 되면 저 도솔천에 계신 천주, 미륵님이 인간으로 오시는데, 너희들은 그 때 열반에 들라.”고 말입니다. 이것은‘나의 법이 궁극이 아니다. 내가 죽고 난 후 3천 년 경, 말법시대에 천주님이 도솔천의 보좌를 떠나 속세의 인간으로 오시어 지상에 용화낙원 세계를 건설한다. 그 도솔천의 주인, 미륵님이 진정한 부처이니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서 궁극의 도를 통하라’는 것입니다. 석가 부처는 스스로 자신 의 가르침은 인류를 건져 낼 수 있는 완성된 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한계이며 그의 가르침의 최종 결론입니다. 석가모니가 자기에게 매달려 있는 구도자들에게 대기발령을 내린 겁니다. 요컨대 불교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는‘천지 질서가 바뀌는 가을개벽이 오며, 그때 새로운 깨달음을 열어 주시는 새 부처님, 희망의 부처님, 구원의 부처님이 오신다! 그분은 도솔천의 천주(하느님)이신 미륵불이다’라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내가 미륵이니라.”(道典2:66:5)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인류사회를 구원하는 주인은 석가모니가 아닙니다. 석가모니는 과거의 부처요 미래의 부처는 미륵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절간에 가보면 석가모니불이 주불[主佛: Lord buddha]로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미륵 의 실상이 이토록 심각하게 철저히 왜곡되어 고승대덕은 물론 모든 수행자와 일반 신도들도 미륵불의 실상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천의 동서 2대 종교의 가르침의 한계
동서양의 2대 종교라 할 수 있는 불교와 기독교 가르침의 총 결론이 무엇 입니까.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석가모니의 도법으로 인류의 이상낙원이 건설되는 것이 아니고, 또 예수 성자의 가르침, 그의 속죄론, 부활론 등으로 온 인류가 총체적, 본질적으로 구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사적인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북방 불교로 보면 올해가 3,035년으로 지난 1974년, 갑인甲寅년이 불기 3,0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 기독교에서는 예수 재림 시기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구약의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 2천 년, 아브라함에서 예수 초림까지 2천 년, 예수 초림으로부터 재림까지 2천 년 해서 전체를 6천년으로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는 동서의 기독교와 불교의 구원론의 결론인, 미륵불의 강세와 예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전개되 는 가을 대개벽의 시간대로 이미 들어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직도 사람들이 길을 못 찾고 있습니다. 아니,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아닌 참 하나님 아버지가 오신다는 것 자체를 전혀 믿지를 않고 있고, 불교는 미륵이 56억 7천만년 후에 온다는 설에 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 우리나라의 불교인들은“강증산 상제님이 미륵님이다. 도솔천 하나님이다! 대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다!”이런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질 못합니다.
결론을 정리하면, 예수와 석가, 이 동서양 2대 성자의 깨달음의 속 내용은 한마디로 천지의 질서가 바뀌고 그들을 내려 보내신 다른 분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상의 지존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배경을 통해서 인간으로 오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어떠한 권능으로 구원사업을 펼치시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가르침을 쉽게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선천 종교의 깨달음의 한계요, 구원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입니다.
최수운 대신사의 천주님 강세 선포와 동학 신도들의 상제관 왜곡
동학 속에 깃든 인류 구원 소식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 다음 3절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동양과 서양의 불교와 기독교의 서원과 기도에 감응하셔서 마침내 인간으로 오시기 위해 준비를 하시는 그 출발점, 즉 동방 한민족의 근대 역사의 서막을 알린 동학에 대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조선을 비롯한 동양 각국이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폭압에 침몰당해 가던 19세기 말, 하늘에서 동방의 이 땅에 이름 없는 한 구도자를 불러 세워 신교의 도맥을 계승하게 하고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새 세상이 열릴 것을 선언케 하셨지요. 그 구도자가 누굽니까? 바로 동학東學의 교조 수운水雲최제우 崔濟愚대신사입니다.
최수운 대신사는 경신년(1860년 4월 5일)에 인류의 새 세상을 선포하라는 상제님의 천명과 신교를 받고 도통을 합니다. 그것이 우주사의 새 장을 열어 놓은 천주님과의 천상문답 사건이죠. 당시 상제님은 수운에게“주문 呪文을 받으라.”하시고 본 주문 열석 자와 강령 주문 여덟 자를 내려 주셨는데, 그 주문이 바로 서두에 읽었던 시천주 주문입니다.
시천주는‘인간으로 오시는 천주님을 모셔라. 인간으로 오신 천주님을 모셔야 한다. 지금은 인간으로 오시는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 천주님을 모시는 때다. 내가 내려 보낸 공자, 석가, 예수가 가르치던 선천의 성자 시대, 아들 시대는 다 끝났다. 그 기운을 다 거두어서 이제는 내가 인간 역사에 직접 개입한다. 이제부터는 내가 친정을 한다, 그러니 너희 창생들은 나를 잘 모셔라.’이런 뜻입니다.
그렇건만‘여전히 동학 신도들은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린다, 최수운 대신사가 다시 올 것을 기다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기적을 체험한 동학 신도들의 교조 갱생의 믿음
최수운 대신사가 천명과 신교를 받들어‘인간으로 강세하시는 천주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시대를 선언하며 동학을 창도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경상도 일대에 동학이 널리 퍼집니다. 그 급속한 전파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는 동학을 사도난정邪道亂正으로 규정하여 최수운을 체포합니다. 그리고 갑자(甲子: 道紀前7, 1864)년 2월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최수운 대신사는 처형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망나니가 최수운 대신사의 목을 칼로 아무리 내리쳐도 목이 떨어지질 않는 겁니다. 결국 최수운 대신사가 청수를 모시고 상제님께 기도를 하고 나서야 목이 떨어져 죽습니다.
상제님은 인간으로 오셔서“내가 동방에 와서 30년 동안 금산사 미륵전에 머무르면서 최제우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주었더니 조선 조정이 제우를 죽였으므로 내가 팔괘 갑자八卦甲子에 응하여 신미(辛未: 道紀1, 1871)년에 이 세상에 내려왔노라.”(道典2:94:6~7) 고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나 동학 신도들은 자기들의 대선생大先生이 다시 강세한다고 믿습니다. 임종 전의 이적 때문에, 천주님의 선仙의 조화를 썼던 자기들의 교조가 다시 인간으로 오신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학에는 기독교 이상으로 부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증산 상제님은 인류구원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 동서양의 불교와 기독교, 이들 선천 종교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동방 한국 땅에서 조선 왕조 말기에 창도된 동학, 이 3대 종교를 예로 들어주셨습니다. 이 가운데 서학(기독교)과 동학은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어요. 자기들이 모신 교조가 다시 재림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상제님은 4절에서“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이라고 하십니다. 각 종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역사적으로 다른 실제 인물들이 다녀갔는데 지금 상제님은 누가 와도 한 사람은 온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한 사람만 강세하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이 말씀의 이면에는 숱한 문제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속에 전개되어온 실제의 구원사의 전 과정들이 다 생략되고 최후의 결론 과제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개벽의 그 날을 앞두고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바로 이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분이 꼭 오신다는 것이고, 그 한 사람이 오면 모든 종교의 신앙인들을 비롯한 온 인류가‘내가 섬겨온 바로 그분의 이상이 성취되었다’고 인정하고 따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상제님의 이 말씀을 불교인들에게 얘기하면“미륵님이 재림 예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하고 못 받아들일 것 아닙니까? 자기가 믿는 종교의 역사와 교리와 구원론의 핵심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누구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누가 오든지 한사람만 오면 온 인류가‘아~ 마침내 나는 구원을 받았구나!’하고 저마다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고 하신 것일까요?
지금 이 말씀 속에는, 앞으로 오는 가을 우주개벽의 실제상황에서 살아남는 은혜가 너무도 지극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큰 구원 의 은총을 받기 때문에 오직 개벽 후 최후의 심판이 끝나고 나서야, 어떤 분이 오든지 간에 그분이 바로 자기가 기다리던 아버지 하나님이며, 도솔천 천주이신 미륵님이며, 옥황상제님이라고, 누구도 쉽게‘그 한 분’을 받아들인다는 깊은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 재림은 아버지의 강세를 두고 한 말이다
자, 그 다음 5절을 볼까요. 상제님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재림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신앙에 대해 너무도 크게 상심하시어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를 해주십니다.
“‘예수가 재림한다.’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동서고금의 모든 성자들, 나름대로 깨진 자들은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을 얘기했어요. 그것이 기독교 구원관의 결론이요 불교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잘못된 아버지관의 진리 전수로 빚어진 재림 신앙이 있었다는 겁니다. 상제님은 지금“‘예수가 재림한다’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는 한 말씀으로 선천 종교의 잘못된 구원관을 지적해주고 계십니다.
즉, ‘예수가 재림한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의 체계를 세운 바울과 12사도들의 믿음 속에서 나온 그릇된 가르침이다. 예수가 오는 것이 아니요, 예수를 내려 보낸‘나’곧 아버지가 올 것을 말한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서교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지상의 인간 역사 위에 천상의 천국을 직접 건설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동양 문화의 두 중심축으로 알려진 인도와 중국에 와서 한 생애를 바친 분이 바로 이마두(마테오 리치) 대성사 님(1552~1610)입니다. 『도전』2편 30장을 보면 이마두 대성사님에 대한 말씀과 함께 그 결론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에 그쳐 중 진표가 석가모니의 당래불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道紀前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도기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에서 말하는‘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道典2:30:12~17)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다! 곧‘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인데, 상제는 곧 나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증산 상제님이 바로 동서 2대 종교에서 신앙해 본래의 조화주 하나님이심을 역사적인 안목을 갖고 깨칠 수 있게 됩니다.
자, 지금까지 동서양의 2대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의 구원론의 총 결론과 이들의 구원론의 과제를 바로잡은 동학의 결론, 즉 상제님의 강세 소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유교와 도교에서는 아버지 상제님의 강세에 대해 어떻게 예고하고 있으며 그 왜곡의 실상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공자의 깨달음과 고조선에 대한 역사 은폐
공자의 깨달음
먼저 유교를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공자의 상제님 강세에 대한 깨달음과, 상제님과 천자문화의 종주국인 고조선에 대한 역사 왜곡과 은폐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공자는 누구보다도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오신다는 것을 주역 공부를 통해서 천리를 꿰뚫어 철저히 알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주역을 가장 많이 읽은 인물로서 주역 해설서를 열 편이나 지었습니다. 그것을 소위 열 날개의 십익十翼이라 하는데, 유교의 경전인『주역周易』중에서 경문(經文:占의 原典)을 이론적·철학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 중에「설괘전說卦傳」을 보면‘제출호진齊出乎震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 간艮은 동북지괘야東北之卦也니 만물지소성종이소성시야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일새 고故로 왈 성언호간曰成言乎艮이라. 하나님이 동방[震]에 출세하신다. 동북 간방은 만물의끝남과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고로 하나님의 진리 말씀이 간방에서 이루어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완성된 진리가 동북방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또 공자는 만년에 제자들에게“도지불행道之不行을 아지지我知之요 승부부어해乘浮浮於海하야 욕거구이欲居九夷라, 내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알았노라.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에 가서 살고 싶구나.”( 『論語』「子罕」) 하고 자기의 심경을 고백합니다.
여기에는 기가 막힌 사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과연 공자가 역사의 정의를 아는 성인인지 정말로 한번 따져주고 본질을 물어야 할 문제입니다.
공자가 살았던 때가 2,500년 전이 아닙니까? 고조선이 초대 단군성조부터 쭉 내려가서 47대 고열가 단군 때 문을 닫았습니다. 그 때가 BCE 238년입니다. 그렇다면 공자는 그보다 약 200년 전, 고조선이 망하기 훨씬 전의 인물입니다. 당시 공자가 살던 산동성의 노나라에서 보면 바다 건너에 분명히 단군왕검의 조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공자는 조선이라는 말을 아예 쓰지도 않고, 구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도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으니 나는 저 바다 건너 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입니다. 분명히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고, 조선 백성이 있고, 조선 문화가 있었는데, 이렇게 동방의 역사를 왜곡시킨 것입니다.
그는 조선이 천자문화의 고향이요, 천자를 내려 보내신 상제님을 신앙하던 상제문화의 원 뿌리요,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중국 땅에서 상제문화, 천자문화의 고향이요 심장부가 바로 산동성입니다. 산동성의 상징이 바로 태산인데, 그 태산 꼭대기에 상제님을 모시는 전각, 옥황전玉皇殿이 있습니다. 그 옥황전으로 올라가려면 마지막 관문인 서신문西神門을 지나게 되는데, 그 서신문을 통과하면서 정면을 바라보면 눈앞에 기절초풍할 장면이 펼쳐집니다. 왼쪽의 도교 사원인 벽하사碧霞祠정문 앞에서 옥황전으로 향하는 첫 문 바로 위에 붉은 바탕에 노란 색으로 네 글자가 쓰인 현판을 만나게 되면서 말입니다.
그 네 글자가 무엇입니까? ‘자기동래紫氣東來’입니다. 자줏빛 자, 기운 기, 동녘 동, 올 래 자, 자 자는 자금성 할 때의 자 자로 천자를 상징합니다. 자기 동래란 천자 기운, 즉 천자 문화의 기운이 동방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이‘자기동래’는 심양의 고궁 봉황루, 서태후가 세운 이화원 등 여러 곳에 걸려 있습니다. 본래 이것은 노자가 함곡관을 지날 때 문지기에게 써준 문구라고 합니다.
공자의 기운을 거두심
공자의 고향 산동성 곡부를 가보면 완전히 공자의 세상입니다. 공자의 유적지는 크게 공자 사당인 공묘孔廟, 공자의 자손이 살고 있는 곳의 관청인 공부孔府, 그리고 공자와 그의 자손들 무덤이 있다는 공림孔林이렇게 세 구역으로 구분하여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공림은 공씨 집안의 공동묘지로 그 규모가 약 2평방킬로미터에 달하며 공자가 죽고 난 후 2,500년 간 70세대에 걸쳐 약 10만 여명의 공자 후손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묘는 노나라 애공이 세운 사당으로 역대 황제들이 계속 증축하여 지금은 22만 평방미터에 달하며,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수많은 부속 건물이 마치 궁전처럼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자를 대성大聖, 또는 지성至聖이라 하여 제왕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상제님의 강세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제대로 쉽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50세에 지천명知天命을 외쳤으면서도 그 주재자이신 상제님을 은폐시킴으로써 자기가 종주가 되어 진리의 눈동자인 상제 문화를 약화시키고 무너뜨렸습니다. 그런 공자의 가르침 아래 우리 동방 한민족은 조선 5백 년 동안 사색당쟁으로 찢어지고, 최후에는 참혹하게 망해서 결국 일본제국의 침략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라가 분열되어 근 천만 명이 죽거나 병신이 되는 패망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왜곡된 거짓 역사의 결론은 진리의 근원인 상제 문화를 완전히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이에 대해 상제님은“공자야, 네가 천추千秋에 대접을 받았으니 내 세상 에는 그 녹祿을 끊으리라. 그러나 네가 간절히 비는 고로 물밥은 내려 주리라. 이제 천하에 공자 신명이 머물 만한 땅이 없게 되었느니라.”(道典4:46:1∼3), “너는 내 도道를 펴라고 내려 보냈거늘 어찌 제자들을 도적질 해먹게 가르쳤느냐. 그 중생의 원억寃抑을 어찌할까. 그러고도 성인이라 할 수 있느냐! 너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道典10:40:9∼10) 하시며 공자를 심판하시고 그 기운을 거두는 공사를 보신 것입니다.
도교의 대라천과 상제님 소식
이어서 도교를 살펴보겠습니다. 도교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하냐면, 공자처럼 이치를 통하고 석가처럼 좌선을 하여 심법이 밝아져서 무엇을 보는 게 아니고, 천지의 신도神道를 크게 통해 몸을 가지고 천상에 올라가 신도 세계를 보고 내려와 그것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예를 들면, 도교에서는 대라천을 말합니다. 이 우주는 동서남북에 8천씩 32천의 복합적인 다천 구조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최상천이 있는데, 동서남북의 여러 하늘을 벌려 놨다 해서 큰 대 자, 벌릴 라 자를 써서 대라천이라고 합니다. 이 대라천에 대해 선가의 8대 신선 가운데 하나인 당나라 때의 여동빈은 “옥황상제께서 사시는 곳이 삼천대천세계의 천종天宗(하늘의 종주)이니 영원히 물러서는 법이 없고 견줄 것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높다. 그러므로 대라라고 한다.”(呂純陽曰: 玉帝所居, 爲三千大千世界天宗, 永無退轉, 至高無比, 故云大羅.)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라천은 삼계의 모든 하늘 중에서 가장 높은 하늘, 즉 하늘에서 가장 높은 하늘-하늘 세계의 최상 하늘-을 말합니다. 이 대라천의 수도[현도玄都]가 바로 옥경玉京이며 그 아래에 삼십이천이 있고 각 하늘에는 천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옥황상제님이 그 대라천에 살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즉 대라천은 대우주를 다스리시는 옥황상제가 머무는 곳으로서 온 하늘의 종주宗主이며 그 어느 하늘과도 비할 수 없이 지극히 높으므로 대라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도교의 깨달음의 세계는 불교나 또는 유가보다도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다 내려 보냈다
이어서 6절에서 증산 상제님은“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하고 정리를 해주십니다. 곧 상제님은 본래 유불선 기독교에서 외쳐온 참 하나님입니다. 예수를 유대에 내려 보낸 아버지 하나님이요, 도솔천의 호명보살로 있던 구도자 석가모니를 인도에 보내신 도솔천 천주님이며, 공자에게 천명을 내리신 상제님입니다.
“내가 내려 보냈느니라!” 여기서 말씀하신‘내려 보낸 대상’은 크게 보면 동서의 성자들뿐만 아니 라 모든 범부 중생들, 그리고 자연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까지를 다 포함 합니다. 천지 안에 있는 만백성을 우주의 주관자이신 상제님이 내려 보내 쓰고 계 신다는 말씀입니다.
공자, 석가, 예수는 모두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다! 이 말씀은 달리 표현하면‘석가가 이 세상에 온 본래의 사명이 저마다 있다, 예수가 이 세상에 내려온 사명이 있다, 공자와 노자가 이 세상에 온 사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모든 인간이 나름대로 이루어야 할 사명, 업을 받아가지고 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상제님이 선천 성자들에게 내리신 본래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불지형체佛之形體요 선지조화仙之造化요 유지범절儒之凡節이니라 불도는 형체를 주장하고 선도는 조화를 주장하고 유도는 범절을 주장하느니라. (道典2:150:2)
상제님께서 예수에게 말씀하시기를“야소야, 너를 천상에서 내려 보낼 적에 내 도를 펴라 하였거늘….”(道典10:40:16)
상제님께서 동서의 성자를 내려 보내실 때, 불교의 석가모니에게는“불지형체라, 이 형신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자리를 찾는 공부를 하라.”하고, 동방의 노자와 중동의 예수에게는“선지조화라, 조화의 도를 펴라.”하셨습니다. 또한 유가의 공자에게는“유지범절이라, 인간에게 범절을 가르쳐라. 인간이 되는 윤리, 천지의 도를 바탕으로 한 도덕을 가르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각 성자들이 받은 명命과 과제가 달랐던 것입니다.
지난 선천 봄여름 상극의 세상에서, 인류는 크게 유·불·선·서도의 4대 종교의 씨를 뿌려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제 천지의 가을철을 맞이하여, 인류 구원의 총 결론으로서 이들을 내려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친히 가을 문화를 열어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선천의 지난 봄여름 세상은 가을철에 아버지께서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성숙의 대통일 문화, 열매 문화, 알캥이 문화를 내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려 보내신 성자들이 천명으로 받은 사명은 바로‘가을철의 추수문화를 열기 위해 아버지께서 직접 오신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선천 종교의 구원론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상제님은 선천 종교의 구원론의 총 결론을 2편 40장에서 여섯 개의 절로 간결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그럼 이 성구말씀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상제님은“선도와 불도와 유도와 서도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근원이 되었나니”(道典4:8:1) “각 족속의 모든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아 후천문명의 기초를 정하느니라.”(道典4:18:4)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불·선·기독교를 모르고, 그 구원론의 최종 마무리 핵심 제대로 모르면 천상의 진리 주재자 아버지를 모르게 되고, 마침내 아버지 하나님이신 상제님이 강세하여 열어주시는 상제님의 진리에 대한 확신, 즉 오늘의 증산도가 진정으로 인류 보편의 구원 진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 방황을 하게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친 일심신앙으로 성공 할 수 없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