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꿀 농사를 짓고 있는 A씨는 요즘 온종일 하늘만 쳐다보는 게 일상이다.
올해 들어 지난달 초까지 봄 같지 않은 서늘한 날씨 탓에 농사를 망치게 생겼기 때문이다. A씨 양봉장에는 벌통이 300여 개 있지만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텅텅 비어 있다. 저온현상으로 꿀벌이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집단 폐사하기도 했다.
A씨는 "꿀벌은 2~4월에 알을 낳아 개체 수를 3배 가까이 늘리는데 올해는 이상기온에다가 작년부터 퍼진 낭충봉아부패병이란 전염병 때문에 토종벌 95% 이상이 사라졌다"며 "17년째 농사를 짓고 있지만 올해 같은 적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4월 평균기온은 9.9도로 37년 만에 가장 추운 봄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꿀을 못 먹어서가 아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식물 중 3분의 1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기는 충매화다. 충매화의 80%는 꿀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기온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환경전문가는 꿀벌이 줄어든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벌의 주요 꿀 채집원인 아카시아 나무 개체 수 급감을 꼽는다. 아카시아는 온난화에 약하다. 기후변화로 한반도 기온이 올라가면서 아카시아 재배 면적은 최근 20년 사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변하면서 아열대성 식물이 크게 늘고 있지만 아열대성 식물에서는 꿀이 나지 않기 때문에 꿀벌에게는 있으나 마나다.
한국토봉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벌꿀 생산량은 2003년 3만3000t을 정점으로 매년 감소하다 지난해에는 1만9500t까지 줄었다. 지난달부터 양봉농가 최대 수입원인 아카시아 꿀 수확 시기를 맞았지만 올해는 사상 최악의 수확량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양봉농가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장 꿀이 비싸 못 먹게 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꿀과 꿀벌의 감소가 식물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손점암 한국토봉협회 회장은 "7월쯤이면 토종벌은 사실상 전멸할 것"이라며 "수확량이 줄면서 1차 산업에 영향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식물 생태계가 교란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은 꿀벌만이 아니다. 개구리, 물새 등도 기후 변화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개구리 등 양서류는 환경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물이다.
환경 전문가는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양서류 6000여 종이 멸종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제습지보호기구는 물새 900여 종 가운데 40%가량이 최근 5년 새 개체 수가 급감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자연보호연맹(ICUN) 보고서는 38만여 종에 달하는 전 세계 식물 가운데 5분의 1 이상이 기후변화로 인해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기후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사회ㆍ경제적 피해를 야기한다"며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조건인 먹을거리 수급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재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