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세계의 종말을 계산하는 컴퓨터
마야인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있었다. 케찰코아틀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천리안을 가지고 축지법을 쓰며 하늘의 천장 네 모서리와 지구의 둥근 표면도 조사했다는 이 ‘재규어’들이다. 이 종족을 질투한 다른 힘 센 신은 “우리의 창조물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좋지 않다. 다알고 다 본다면 그들도 신이 되지 않겠는가?”며 그들이 지구의 일부분만 보도록,눈에 안개를 불어넣어 시야를 가렸다. 최초의 인간들은 지혜와 지식을 빼앗겼다.
에덴동산의 이야기와 흡사한 이 이야기는 물론 정복자들이 도착하기 이전부터 간직해온 전승이다. 지구를 조사하고 하늘을 조사했다는 최초의 인간들과 아담은 다른 존재일까? 치밀하고 창의적이며 세련되고 정확한 역법을 바탕으로 고도의 수학적 계산을 이용한 마야의 위대한 천체관측도 그냥 우연일까?
우스운 것은 이런 천체도를 그릴 능력이 있었던 마야인들이 바퀴하나 발명하지 못했을까, 영원한 세월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려는 업적을 남기면서 물려쌓는 천장대신 아치형 천장의 원리는 발견하지 못했을까, 백만단위는 헤아리면서 옥수수 한자루 계량하는 방법은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이 모순은 뛰어난 문명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들은 올멕에게서 역법체계를 가져왔다. 그러나 올멕은 누구로부터?
마야력에 따르면 1태양년은 365.2420일로 0.0002일의 오차만 난다. 달의 공전주기도 29.528395일로 29.530588로 계산한 최신과학에 뒤지지 않는다. 월식과 일식을 계산하는 표, 0의 개념, 자릿수를 이용한 수의 표현방식 등 근대 수학의 발견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처럼 마야인도 금성이 새벽별이자 저녁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구에서 보았을 때 금성이 같은 장소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584일을 근사치로 계산하고 있었다. 이 샛별의 회합주기를 성년(촐킨)이라고 불렀는데, 오차수정방법까지 있었으며 6000년 동안 단 하루가 차이나는 역법이었다. 왜 이런 정밀도가 필요했을까?
그들은 긴 기간을 계산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고 대주기에 따라 세상이 파멸과 재창조를 거듭한다는 믿음을 표현했다. 그들에 따르면 현재의 대우주는 기원전 3114년 8월 13일에 해당하는 4아하우 8쿰쿠의 암흑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대주기는 2012년 12월 23일인 4아하우 3칸킨에서 끝난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그들은, 시간은 사람들의 생명과 문명에 관계없이 주기와 함께 영속한다고 믿었다.
서구인들의 대부분이 세계가 기원전 4004년에 창조되었다는 어셔 대주교의 견해를 파기한 것이 200년전의 일이다. 마야는 몇 백만년이라는 숫자를 가볍게 다르면서 벌써 오래전에 이런 믿음을 숫자로 나타내고 있었다. 도대체 실용적이지 않은 이 숫자는 무엇에 필요했던 것일까?
22 신들의 도시
중앙 아메리카 대부분의 전설은 세계의 제 4시대가 겪은 비참한 최후를 전한다. 대홍수가 일어난 후에 하늘에서는 태양이 사라지고 불길한 암흑이 뒤덮혔다. 누군가가 성스러운 불꽃 속으로 몸을 던져야 태양이 생길 것이라고 신들이 외치자 두 명의 신이 뛰어들었다. 한 명은 불꽃의 중앙에 타올랐고 다른 신은 불꽃의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타올랐다. 그러자 태양이 서서히 떠올랐다.
이 시기에 태어난 것이 케찰코아틀, 비라코차와 쌍둥이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턱수염을 기른 백인형상이다. 안데스에서 비라코차의 도시가 티아우아나코였다면 중앙 아메리카에서 케찰코아틀의 도시는 제 5의 태양이 생긴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이었다.
케찰코아틀의 피라미드와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가 죽은자의 길을 따라 나란히 서있다. 이 길은 동북쪽으로 기울져 15도 30분 정도로 향하고 있는데, 천문학자들 중에는 이 각도가 이 길을 건설할 당시의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방향을 맞춘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이 길이 은하수라는 주장도 있다.
발굴당시 태고의 신전을 파고들어가자 6단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피라미드가 나왔는데 높이 22미터, 토대는 2만5천 제곱미터였다. 거대한 뱀의 머리 조각이 케찰코아틀을 상징한다. 죽은 자의 길 주위에 서있는 주요 건축물 사이에는 복잡한 연관이 있다고 판단된다. 마치 태양계를 정확히 축소한 듯하다. 케찰코아틀 신전을 태양으로 치면 죽은 자의 길을 따라 서 있는 건축물들은 정확히 생성과 소행성의 궤도를 반영하고 있다. 과연 우연일까?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가 오리온자리를 그려놓았다는 주장과 비교해보면 여기의 천체도도 마찬가지로 불가사의다. 왕이 죽어 신이 된다는 이 신전은 기자 피라미드의 종교적 역할과 거의 비슷하다. 기자와 마찬가지로 세 개의 피라미드가 서있고 길을 따라 배치했다. 세번째 피라미드는 의식적으로 어긋나게 배치한 것도 기자와 같다.
아즈텍인들이 지은 이름인 ‘죽은 자의 길’은 지진 전문학자가 이 길이 걷는길이 아니라 물 웅덩이였윽 것이라는 추측을 하면서 잘못지은 이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높은 벽이 가로막은 이 길에 물이 찼다면 타지마할보다 더 장대했을 것이다. 운하와 수로시스템이 현재는 16킬로 떨어졌지만 고대에는 가까웠을 텍스코 호수까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일까? 지진학자들 말대로 지진을 예측하기 위한거라면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은 틀림없다.
23 태양과 달과 죽은 자의 길
1906년 태양의 피라미드를 조사했을 때 피라미드 상부에서 운모로 이루어진 두꺼운 층을 발견했다. 운모는 시장가치가 있어서 발견되자마자 매각한 것이다. 최근에 테오티우아칸의 다른 장소에서도 운모를 발견했는데 이 운모의 신전은 태양의 피라미드 서면에서 남쪽으로 30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는 파티오 건축물 중의 하나다. 27제곱미터의 넓이에 2층으로 이루어져 바싹 붙은 운모층의 성분은 브라질에서만 생산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바닥재로 쓰지 않는 운모를 바닥 아래 숨긴 것도 괴이하다. 현대과학에서 운모는 축전기나 전기의 절연체, 내화물로 쓴다. 고속 중성자에 대해 부전도성이 있어서 핵반응을 감속시키는 감속재로 사용한다.
춘분과 추분에 태양광선이 피라미드 북쪽에서 내리쬐면 한낮에 완벽한 직선 그림자가 서면 아랫단에 생긴다. 완벽한 그림자가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66.6초다. 이 피라미드를 만든 이후로, 그리고 앞으로도 무너질 때까지 피라미드는 정확한 시계기능을 계속할 것이다. 부패한 독재자와 그 하수인이 피라미드의 겉을 파괴하고 조각상을 파괴했다. 엄청난 훼손에도 불구하고 건설자들이 계획했던 기능은 아직 그대로인 셈이다.
피라미드의 중요한 기하학적 요소는 지상에서 정상까지의 높이와 밑면 둘레다. 기자와 태양의 피라미드 모두가 파이값을 적용해 설계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수학적으로 정밀한 이 값을 우연히 사용했을리는 없다. 고도의 수학지식을 사용했을 뿐만아니라 이집트와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같은 목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3차원의 피라미드를 이용해 구체라는 개념을 표현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태양의 피라미드에서는 훼손되지 않은 지하도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배수로였다. 복잡한 배수시스템으로 보아 물이 매우 풍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데스의 아카파나 피라미드 역시 물에 둘러싸여 있다. 테오티우아칸을 건설한 문명은 의식적으로 복잡한 정보를 부호화해서 내구성이 강한 유적에 수학적 언어로 남겨두었다는 강한 인상을 받는다. 수학적 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