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 보이는 것을 말해보세요.
원 : ‥성벽이 보입니다‥. 오래된 성벽 같습니다‥. 저는 군인입니다‥. 원래는 농민인데 전쟁 때문에 동원되었습니다‥.
김 : 자신의 모습을 말해보세요.
원 : 쇠로 된 모자와 가슴받이를 하고 있습니다‥. 신발은 아주 조잡한 것입니다‥. 창을 들고 군인들 속에 있습니다.
김 : 이름과 나이는?
원 : ‥저는 스물세 살이고‥ 호세 마르티네스가 제 이름입니다‥. 지금 무척 두렵고 설렙니다‥. (흥분을 억제한 떨리는 목소리) 저는 평범한 농부인데 전쟁을 해야 합니다.
김 : 몇 년도입니까?
원 : ‥1, 3, 3, 8이라는 숫자가 눈앞에 보입니다‥. 1338년인 것 같습니다.
김 : 그 지방의 이름이 뭡니까?
원 : ‥카스틸랴‥. 카스틸랴 성입니다.
김 : 누구와의 전쟁입니까?
원 : 이슬람과의 전쟁입니다‥
김 : 지휘관은?
원 : ‥미구엘('Miguel'이라는 글씨를 철자 그대로 읽은 듯하다.)
김 : 장군인가요?
원 : ‥카스틸랴 영주의 기사입니다‥
(중략...)
김 : 다음의 중요한 사건으로 가봅시다‥.
원 : ‥성벽이 보이는 숲 근처에 제가 앉아 있습니다‥. 저는 열여섯 살인데‥ 제가 좋아했던 사람과 앉아 있습니다‥.
김 : 마을 친군가요?
원 : 네‥. 이름은 안나고, 열세 살입니다‥.
김 : 그때의 기분은 어떻습니까?
행복합니다‥.
(중략...)
김 : 또다른 장면으로 갑시다‥.
원 : (다급하게) 아까의 그 전쟁터에서 저는 다리가 한 쪽 잘렸습니다‥. 무릎 위를 칼에 잘렸습니다‥.
김 : 고통스럽습니까?
원 : 그렇지는 않습니다.
김 : 그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원 : ‥우리가 이겼습니다‥. 왜 이런 전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중략...)
김 : 다음 장면으로 갑시다‥.
원 : ‥저는 잘린 다리에 나무를 깎아 대고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김 : 가족들은 누가 있습니까?
원 : ‥딸 하나와 아내가 있습니다.
김 : 아내는 안나입니까?
원 : ‥잘 모르겠습니다.
김 : 아내의 얼굴을 떠올려보십시오‥.
원 :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김 : 아내 이름은?
원 : 마르타‥.
김 : 당신은 그때 몇 살인가요?
원 : 서른 여섯 살입니다‥.
김 : 행복하지 않습니까?
네
김 : 안나와는 왜 헤어졌나요?
원 : 부모가 정한데로 갔는데‥ 안나는 시집을 안 가고 영주의 집에 하녀로 들어갔습니다‥.
김 : 안나는 예뻤나요?
원 : (안타까운 듯) ‥제게는 아름다웠지만, 뛰어난 미인은 아닙니다.
김 : 몇 살에 헤어졌습니까?
원 : 제가 스물다섯 살 때입니다.
김 :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것이 원인인가요?
원 : ‥그것보다는‥ 영주의 힘이 너무 강했습니다‥. 안나의 집은 무척 가난해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 현재의 아내는 어떻게 만났나요?
원 : 떠돌이 집시인데 정착해서 저와 살게 되었습니다‥.
김 : 다리를 잃고 마음이 많이 상했나요?
원 : ‥체념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리를 잃은 것이 큰 장애는 되지 않습니다.
김 : 전쟁으로 마음도 피폐해졌나요?
원 : 아뇨.
김 : 무엇이 가장 힘들었습니까?
원 : ‥저는 많은 것을 생각한 사람이었는데‥ 욕심이 적었고 진지한 삶을 추구했습니다‥. 배운 게 적어서 말은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김 :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까?
원 :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중략 ...)
김 : 이제 죽음의 순간으로 갑시다‥.
원 : (깊은 한숨을 반복하고 잠시 후 다시 안정을 찾음) ‥천사가 보입니다‥. 지금 막 죽었습니다‥. 천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 : 그 천사는 아는 얼굴인가요?
원 : ‥아닙니다‥.
김 : 보이는 것을 얘기하세요.
원 : ‥저는 방안에 있는데‥ 아내는 숨죽이고 울고 있습니다‥.
김 : 지금의 기분은?
원 : 아내에 대한 연민과 새 삶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김 : 살아 있을 때 새 삶을 기대했었나요?
원 : 아뇨‥.
김 : 마음이 자유로운가요?
원 : 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가져가지 못하는 것들 때문입니다‥.
김 : 그게 뭡니까?
원 : 참된 평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김 : 참된 평화가 그 생애의 과제였나요?
원 : ‥지금 누군가가 제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참 평화를 소유하라고 합니다‥.
김 : 당신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원 :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김 : 그 생애에 대해서 말해 보십시오.
원 : 저는 제 의사표현을 한 번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늘 순종하는 사람이었고, 젊었을 때는 영주의 명령대로 살고, 늙어서는 체념하고 살았습니다‥. 제겐 평화가 없었습니다‥. 절망은 아니었지만‥. 이 생애에서 배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생애가 저의 물질적 생애의 마지막이고, 다음부터는 정신적인 생애가 됩니다‥. 이 생애는 하나의 전환점입니다‥.
김 : 어떻게 압니까?
원 : 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목소리도 들리고 마음으로도 전달이 됩니다‥. 이 생애 이후에 저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진화했습니다.
김 : 한 단계 도약인가요?
원 : (진지하게) 두 단계입니다‥. 중요한 생애였습니다‥. 이제 목소리가 안들립니다‥
김 : 잠시 휴식하십시오.
두 번째 생애는 지구 반대편의 스페인에서였다. 윤회의 의문점 중 하나는, 같은 나라나 문화권에서만 환생을 거듭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같은 지역이나 민족으로 거듭 태어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것은 절대 법칙이 아니며, 영혼도 익숙한 분위기에 자연히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유명한 윤회 연구자인 프란시스 스토리Francis Story에 따르면 '조건들이 유사하게 주어진다면, 한 인간은 그가 죽은 곳이나 그 부근에서 환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한 영혼이 다양한 삶의 형태와 모습들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화권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내가 퇴행시켰던 환자들은 여러 나라에서의 생애들을 얘기했지만, 대부분은 한(韓)민족으로서의 생애가 두 번 이상 거듭되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는 것은, 전생의 기억들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속에 기록된 것이 아님을 확인케 해준다. 어떤 조상도 세대마다 다른 대륙을 넘나들 수는 없기에, 여러 민족의 유전자들이 섞일 수는 없다. 각 생애의 기억이 서로 다른 문화권이라면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으로도 설명이 안 된다. 오로지 개인의 직접 경험이라고 인정하는 것만이 현상을 이해하는 가장 논리적인 결론이다.
윤회의 개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왜 어려운가? 새로운 사실이기 때문이다. 업(業)이라는 법칙에 따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책임한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는 고상하고 책임감 있는 이론일 것이다. 그 책임을 회피하고 빠져나가고 싶은 사람들은 윤회의 개념이 무척 마음에 걸릴 수도 있다. 윤회론을 받아 들이면 삶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바뀌게 되고, 하나의 목적과 지향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 생명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받아들이려 해도 우선은 알아야 하고, 부정하려고 해도 직접 파헤쳐봐야 한다. 나는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명백한 근거와 사실들에 따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내 의지와 관계없이 받아들인 것처럼, 윤회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종교전쟁에 휘말려 다리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져 희망 없이 살아가는 가난한 불구의 사나이인 '호세'의 생애는 현실에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사색과 내적인 평화의 추구를 강요했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면 마음은 금방 죽을 것 같지만, 생명은 특유의 강인함으로 그 존재를 앞으로 끌고 나간다. 삶과 죽음에 한 발씩을 디디고, 끊임없이 자살을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극복하는 것이다.
여러분도 그런 좌절과 자기부정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견뎌내고 주저앉지 않을 때 우리는 성장하게 되고 남들의 고통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호세는 살아있을 때 그 지역의 종교였던 카톨릭의 신자였다. 당연히 윤회의 개념은 생각도 할 수 없었겠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 직후 새 생명이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그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났을 때, 자신의 본질과 윤회에 대해 원래 가지고 있던 지식을 회복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임사체험자들의 이야기들을 보면 자신이 살았던 문화권에 따라 죽음 후에 경험하는 세계의 모습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영혼의 세계는 상념의 세계라서 죽음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살아 있을 때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렸던 내용들이 현실화되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또 한가지는, 그 사람에게 익숙한 분위기를 그대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가 주는 충격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호세에게 들려온 목소리는 그를 안내하는 천사의 음성일 수도 있다. '물질적 삶의 마지막 단계'라는 가르침은 우리의 영혼이 환생 속에서 배우고 발전해간다는 윤회의 기본 이론을 뒷받침 해주는 것이다. 상실과 좌절이라는 인간적 실패의 모습 속에서 살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성장한 생애였다.
(중략 ...)
전생 퇴행에서 죽음의 체험은 아주 중요하다. 그 죽음의 고통과 원인들은 강력한 상념의 에너지로 변하여 영혼의 기억 속에 새겨지게 되고, 그 강력한 감정은 다음 생애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두려움이나 불안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원인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정신분석을 해도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