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 런던대 연구팀 실험 성공
영화나 무협지에 종종 등장하는 ‘유체이탈’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1990년 국내에서만도 관객 200만 명을 동원한 영화 ‘사랑과 영혼’의 남자 주인공처럼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그런 상상 말이다. 최근 영국과 스위스의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가상현실 기술로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 서양인 10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쯤 경험
정신과 전문의들은 유체이탈을 ‘몸 바깥에서 자기 몸을 보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주로 뇌중풍(뇌졸중)이나 간질, 약물중독 환자들이 이런 증상을 경험한다. 일부는 교통사고 같은 큰 사고를 겪은 뒤 남은 정신적 외상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영국 런던대(UCL) 조사에 따르면 서양인 10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쯤 이런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 1987년 경비행기를 몰고 옛 소련의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내려 세계를 놀라게 한 독일인 마티아스 루스트 씨도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그는 소련에서 풀려난 뒤 인터뷰에서 “비행하는 동안 마치 몸에서 정신이 분리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이 같은 육체와 인식의 괴리 현상의 원인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한국에서도 그저 ‘빙의(憑依·귀신 들리는 것)’의 일종으로 여겨져 왔다.
런던대 신경과학연구소 헨릭 어슨 박사팀은 최근 건강한 사람도 유체이탈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슨 박사는 정신과 치료와 군사훈련 등에 사용되는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했다.
○ 가상의 몸으로 자아 옮겨 가
연구팀은 먼저 가상공간에 실험 참가자의 가상 캐릭터를 만들었다. 실험 참가자는 머리에 가상공간을 볼 수 있는 특수 장비를 뒤집어쓴다. 화면은 참가자의 뒤쪽에 설치된 카메라가 촬영한 입체 영상을 보여 준다. 참가자는 자신의 뒤편에 서서 가상 세계의 자기 모습을 지켜보는 셈이다.
플라스틱 막대 2개 중 하나는 참가자의 실제 가슴을, 또 다른 하나는 가상 캐릭터의 가슴을 반복적으로 찔렀다. 연구팀은 이어 망치로 가상 캐릭터를 내려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땀 분비량이 늘어난 것. 마치 실제 상황에서 위협을 느끼는 듯한 생리 반응을 보였다. 어슨 박사는 “자아가 실제 몸에서 가상의 몸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즉 가상세계의 자기 모습(시각)과 자극(촉각)을 연결시킨 것.
스위스 로잔공대 올라프 블랑크 교수팀은 홀로그래픽을 이용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의 가상 캐릭터를 세워 두고 참가자의 진짜 등과 가상 캐릭터의 등을 동시에 몇 차례 자극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을 몇 발짝 뒤로 물러나게 한 뒤 원래 있던 자리를 찾아가라고 했다. 그러자 참가자들은 가상공간 안에서 자신의 가상 캐릭터가 서 있던 자리로 옮기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자극을 동시에 주지 않거나 가상 캐릭터가 사람 형태가 아닐 경우 실제 공간의 원래 자리를 찾아갔다. 시각과 촉각이 일치하는 실제 공간에서처럼 가상공간에서도 자신의 인공 캐릭터와 동일시하려 한다는 것이다.
○ 시각과 촉각을 일치시키려는 뇌 작용
이번 연구는 미국 카네기멜론대와 피츠버그대 연구팀이 발견한 ‘고무손 착각’ 현상과 맥이 통한다. 고무손 착각은 실제 손을 가리고 가짜 고무손을 보여 주며 둘 다 간지럼을 태우면 고무손이 더 간지럽다고 느끼는 현상이다. 시각 정보와 촉각 정보를 일치시키려는 뇌의 작용이다.
어슨 박사는 “시각과 촉각을 관장하는 뇌 회로가 엉켰을 때 유체이탈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연구는 뇌질환 장애를 겪는 환자 외에도 원격 업무를 보는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로봇을 이용한 원격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들의 교육에 유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인간이 자아를 어떻게 인지하는가에 대한 오랜 철학적 물음에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는 23일 발행된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 소개됐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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