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九天으로 이루어진 천상 신명계 |
저 푸른 하늘 너머에 우리가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 즉 천상 신명계는 과연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어져 있는가?
증산 상제님께서는 천상 신명계가 종적으로 9天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수평적인 33天의 문명권도 존재한다.
죽은 후에 영혼은 서로 생각이 비슷하고 뜻이 통하는 영혼들끼리 모여 생활한다. 예를 들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희대의 학살자는 저급한 악령들이 모여 사는 제일 낮은 하늘에 머물고, 간디나 테레사 수녀 같은 역사의 빛나는 혼은 지고한 성신들이 모여 사는 아주 높은 하늘로 오른다. 또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끼리, 불교인은 불교인끼리, 증산도인은 증산도인들끼리 모여 생활한다.
우주를 통치하는 하나님 아버지, 즉 상제님은 이들 하늘 중에서 가장 높은 하늘인 9天에 계신다. 앞으로 후천개벽이 되면 지구에는 10天 문명이 열린다.
죽음을 관장하는 부서, 명부
* 죽는 것도 때가 있느니라. 나의 명에 따라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느니라.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 끌고 가는 사람이 있고, 가마까지 가지고 와서 모셔 가는 사람이 있느니라. (道典 9:97:6∼8)
사람의 생명부를 관리하는 천상의 부서가 명부전이다. 생전에 행한 공덕과 죄업을 따져 심판을 하는 곳이다.
[명부에 관한 이야기]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
충청남도 진천 땅 지방과 경기도 용인 지방에서는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이 전해진다. 이는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뜻이다. 이 구절에는 삶과 죽음의 질서를 오가며 생긴 기막힌 사연 하나가 배어있다.
옛날 진천 땅에 추천석이란 사람이 살았다. 하루는 그가 잠시 잠들었다가 애절한 통곡 소리에 잠을 깼다. 그 통곡 소리의 주인은 바로 옆에 있던 자기의 아내와 자식들이었다.
“우리를 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시다니…. 흑흑!”
그는 싸늘하게 누워 있는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제야 지금 자신의 상태가 혼백(魂魄)이라는 걸 알아차리고서 멈칫거렸다. 곧이어 저승사자들을 따라 명부전(冥府殿)으로 인도되어 간 그는 염라대왕 앞에 엎드렸다.
“어디서 왔느냐?”
“예, 소인은 진천에서 온 추천석이라 하는 자입니다.”
“뭐라?”
염라대왕은 대경실색했다. 용인의 추천석을 불러들여야 했는데, 저승사자들의 실수로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온 것이었다. 염라대왕은 진천 땅의 추천석을 즉각 풀어주고 용인 땅의 추천석을 데려오라고 명을 다시 내렸다. 그는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이승의 자기 집으로 쏜살같이 내려갔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육신은 땅에 묻히고 집에는 위패만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용인 땅 추천석의 몸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용인으로 냅다 뛰었다. 혼백이 떠난 용인 땅 추천석의 몸엔 다행히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얼른 몸 속으로 들어갔다. 통곡을 하고 있던 용인 땅 추천석의 가족들은 꿈틀대며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자 기뻐 날뛰었다.
“여보, 다시 살아났구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지만 이들에겐 어떠한 말도 먹혀들지 않았다. 마지못해 하룻밤을 보낸 그는 다음날 즉시 진천을 향해 내달렸다. 진천 고향집에 도착한 그는 상복 입은 아내에게 외쳐댔다.
“여보, 나요 내가 돌아왔소.”
여인은 남편이라고 외치는 외간 남자의 말을 곧이들을 수 없었고, 오히려 모멸감까지 들었다. 그는 몰려온 동네사람들에게 매질까지 당하고 결국 관가로 끌려갔다. 고을 원님은 그의 사연을 쭉 듣고서 다음과 같은 명쾌한 판결을 내렸다.
“진천 땅의 추천석은 사자의 잘못으로 저승에 갔다가 다시 살아 왔으나, 자기의 육신이 이미 매장되었으므로 할 수 없이 용인 땅 땅에 살던 추천석이 버리고 간 육신을 빌린 것이라 생각하노라. 진천 땅 추천석은 조상의 내력과 그 가족의 생년월일은 물론 논밭 등의 재산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알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지금의 저 추천석은 진천에서 살던 추천석의 혼백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할 것을 판결하노니, 양가의 가족도 그대로 실행토록 하라!”
진천 땅 추천석의 혼백이 들어간 지금의 추천석은 생전에 자기의 주장대로 진천 땅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고, 이후 세상을 뜨자 그 육신은 볼래 용인 땅에 살았던 추천석의 것이므로 그곳 가족이 찾아가게 되었다. 한편 이런 일이 있어서인지 그 이후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