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들아카데미와 종교문화연구원,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 등 3개 종교 연구소가 주최한 ‘열린인문학 강좌’에서 열린선원 법현 스님이 서울 수유동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지난 13일 ‘불교의 귀신론’을 발표했다. 지난달 18일 최대광 목사(감신대 강사)의 ‘기독교적 귀신론’을 발표한 지 두번째다.
법현 스님은 불교계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귀신 뿐 아니라 경전 상에 근거한 귀신에 대해서 다차원적으로 귀신론을 풀어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귀신도 마음의 작용의 하나’라는 것이다. 법현 스님은 이를 근거로 마음의 수행을 통해 귀신이나 마구니(마귀)를 극복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 ‘귀신’ 강좌는 △무녀인 정순덕씨와 김동규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박사 공동의 ‘무당이 보는 귀신’(8월3일)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의 ‘귀신과 귀신 담론’(9월7일) △종합 토론(9월25일)으로 이어진다.
아래는 법현 스님의 ‘불교의 귀신론’ 발표문 요약본이다.
1. 귀신 이야기들
귀신은 있는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는가? 귀신이 들린다는데 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귀신 또는 마귀를 쫓아내는 퇴마의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내재한 것을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나하나 풀어보면 그 또한 중요한 의미들을 속에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모든 사상이 다 그렇듯이 귀신에 관한 것도 지금 이 순간에는 여러 나라, 여러 시기, 여러 종교와 전통에서 생겨난 것을 몇 마디, 몇 문장, 몇 편의 논문으로 재단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2. 귀신은 있다고 보아야 하나?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 권2(대정장 46,p.195c)에서는 귀신이 없다고 보는 이를 나무란다. 예부터 성현들이 모두 귀신이 있다고 하는데 왜 혼자서 귀신이 없다고 하느냐고. 그 이야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귀신의 존재에 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많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도의 고승 마명(A.D.100~160?)은 대승기신론(대정장 46,p.582b)에서 “선근의 힘이 없으면 모든 마구니와 귀신들에 의하여 어지럽게 되니 혹은 어떤 형체를 나타내어 공포를 일으키게 하거나 남녀 등의 모습을 나타낼 경우 오직 마음뿐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계가 곧 없어져 뇌란(惱亂)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여 자신의 상태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명상을 진행하여 선정 가운데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 중 하나가 귀신이라고 말한다. 즉 마구니는 마귀를 말하며 귀신과 비슷한 존재이지만 수행을 방해하는 것을 마구니라고 하며 그들의 대장을 마왕이라고 한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회본 권6(한불전1.p.784a~c)에서 “모든 마구니라고 한 것은 천마(天魔)요, 귀는 퇴척귀(堆?鬼)요, 신이란 정미신(精媚神)이다. 이런 마구니와 귀신들이 세 가지의 오진(五塵)을 지어 선한 마음을 깨뜨린다. 첫째 두려워할 만한 일, 둘째 사랑할 만한 일, 셋째 위(違)도 아니고 순(順)도 아닌 마음을 내어서 어지럽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두렵게 하고 애착에 빠지게 하고 하는 일의 순서와 갈 바를 모르게 하여 갈팡질팡하게 하는 것을 귀신들의 작용이라고 하였다.
3.귀(鬼),아귀(餓鬼)?
근본적으로 귀(鬼)와 신(神)은 다른 존재이다. 귀(鬼)는 아귀(peta)의 줄임말로 육도 중생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아귀를 뺀 5도만을 설정했으나 뒤에 6도로 정리되었다.
신(神)은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닌 특별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개념처럼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고 정령과 비슷한 존재로 볼 수 있다.
붓다의 열반(죽음)을 다룬 경전인 반니원경(般泥洹經) 권하(대정장1.p190a)에는 “천룡, 귀신왕, 천악신, 질량신, 금시조신, 애욕신, 사구신이 앞에 나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돈 다음 한족에 머물렀다”고 하여 귀신의 왕이 등장한다. 그리고 귀신들이 살아있는 부처님 앞에 와 머리를 조아린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관정경(灌頂經) 권1(대정장21,pp.495~499b)에 부처님께서 악마, 도둑, 독룡 등에게 핍박받는 비구들을 보고 172귀신왕의 이름과 공덕을 설하면서 이 귀신왕을 믿으면 모든 불안을 없앨 수 있다고 하여 오히려 그를 신앙하게 하는 혼란도 가져온다. 어쩌면 거기에 불교의 특성이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특질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라고 할 만한 현재의 상태를 바꾸면 다른 것으로 된다는 사상이 무아(無我)이므로 귀신왕을 믿게 하여 불안을 없앤다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는 밀교(密敎)의 사상이다.
잡아함경 권5(대정장 2,p.36a)에서는 불교를 호위하는 신들의 하나인 금강력사를 귀신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귀신의 우두머리를 법원주림에서는 귀장(鬼將)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귀신 군대의 대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귀신의 존재는 믿으면 있고 믿지 않으면 없다고 보아도 되는 신념의 문제로 등장한다. 귀신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느냐, 즉 개념에 따라 의식과 믿음도 달라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귀(鬼),귀신(鬼神),마(魔),마왕(魔王)?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자유자재한 존재를 말한다. 사람과 다른 존재에 도움을 주는 선한 귀신과 해악을 끼치는 악한 존재가 있다. 세상을 수호하거나 불법을 호지하는 존재로 대범천왕, 33천왕, 사천왕, 염마왕, 난타용왕, 발난타용왕 등이 선한 귀신으로 분류된다.
나찰(羅刹)은 악한 귀신이다. 나찰은 붓다의 전생 수행자 시절에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게송(偈頌)을 들려주고 잡아먹으려 했던 존재이기도 하다. 야차(夜叉)는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건달바, 야차,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등도 귀신으로 분류한다. 귀신팔부는 야차, 나찰, 구반다, 비비사, 부단나, 구귀, 건달바, 용을 말한다. 이는 천룡팔부처럼 신중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즉 귀신의 개념이 많이 혼재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귀신은 마(魔)로 나타나기도 한다.
마(魔)는 mara의 줄임말. 마(磨)로 쓰다 양 무제 때 마(魔)로 쓰기 시작했는데 달마대사를 높이는 예라 하겠다. 대지도론 권5(대정장25,p.99c)에 혜명을 빼앗고 도법을 수행하고 공덕을 쌓고 선의 뿌리를 개발하는 것을 무너뜨린다. 대지도론 권5(대정장25,p.99b)에 “마에 네 가지가 있다. 번뇌마, 음(陰)마, 사(死)마, 타화자재천마가 그것이다. 앞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은 좋은 마음을 방해하는 것으로 이해하겠는데 또 타화자재천이라는 하늘의 왕이 마귀라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것을 이해하려면 불교의 세계관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5.현실에 나타나는 귀신?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귀신은 그런 귀신이 아니다. 그냥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죽어서 다른 좋은 곳(예를 들면 극락)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주변 사람 또는 관계없는 사람에게 붙어서 몸을 아프게 하든지, 일이 안되게 하든지 하는 해코지를 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존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1)아귀(餓鬼)
우선 초기불교의 교학으로 보면 아귀(餓鬼)의 존재가 나타난다. 다음 생으로 태어날 힘을 가지지 못한 존재를 말한다. 배고픈 귀신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배불리 먹어야 다른 몸을 받아서 태어난다. 그것이 불설염구아귀경 등에 나타나는 아귀의 모습은 무섭고 입에 먹을 것을 가져가면 먹을 것이 불로 변하여서 입과 목구멍 등을 데게 해서 먹을 수 없게 되어 괴로움을 받는 존재이다.
2)중음신(中陰身)
또 하나는 우리 중생들의 삶의 변화하는 모습이 태어나는 것은 생유(生有),살아가는 모습은 본유(本有),죽는 것은 사유(死有)라고 하며,죽은 뒤 다른 존재로 생유하기 전에 머무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을 중유(中有)라고 하는데 이 중유 즉 중음신(中陰身)을 귀신이라고 한다는 설이다.
이 중음신이 어떤 경우는 몇 달, 몇 년 또는 몇 백 년이 간다는 설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현대 퇴마사들의 이야기다. 불교적으로는 맞지 않는 설이며 불교에서도 초기 불교에서는 중음의 시간이 없거나 다음 생으로 연결하는 의지(再生連結識)의 힘이 약한 것으로 생각되는 아귀만이 지금 말하고자 하는 귀신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렇게 볼 때 귀신은 기운이 없고 배고픈 존재인 아귀,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지옥에서 고생하는 존재들, 축생과 수라의 일부, 하늘에 사는 천신들 중 일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6. 귀신은 어디에 사는가?
그럼 귀신은 어디에 살까? 무덤 가에 살까? 공동묘지에? 빈집에?
범망경(梵網經) 권하(대정장24,p.1004b)에 “귀신의 물건이나 주인이 있는 물건 뿐 아니라 도둑질당한 물건 등 일체의 재물은 바늘 하나 풀 한포기라도 도둑질해서는 안된다”는 표현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불교에서는 불교의 대중이 지켜야 할 규범을 설정한 율장(律藏)에 귀신이 사는 곳을 설명하고 있다. 귀신의 물건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 신라의 의적(義寂)스님은 그의 보살계본소(菩薩戒本疏) 권상(한불전2,p.265a)에서 귀신이 주인인 물건은 신묘(神廟)인 사당(祠堂)에 있는 물건으로, 관리는 사람이 하지만 실질적 용도는 귀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귀신촌은 귀신들이 의지하여 살고 있는 곳으로, 모든 풀과 나무를 말한다. 사분율 권12(대정장22,p.641c)에 비구로서 귀신촌을 파괴하는 자는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여 귀신이 살고 있는 귀신촌인 풀과 나무를 함부로 베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법현 스님의 ‘불교의 귀신론’발표문 전문보기
조현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