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윤회를 하는가?
그러면 왜 그러한 삶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인가? 단순히 카르마를 씻기 위해서인가? 윤회를 통해 인간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소개했던 A라는 남자는 퇴행상태에서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를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생에서 해야 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안타까운 목소리로)…수행을 더 했어야 했는데 제 자신의 좌절로 인해 주저 앉아버려, 남을 돕지 못했습니다. 저를 능욕한 청나라 병사들의 영혼은 참으로 불쌍합니다.…(눈물을 흘리며 몹시 괴로운 얼굴을 함) 나는 더 큰 수행과 깨달음을 가르쳤어야 하는데, 제대로 못했습니다. 더 상승하지 못했습니다…."( 『전생여행』 김영우, 정신세계사 )
"우리의 고난은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복잡하고 숭고한 영구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생은 수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성숙을 위해 잠시 타고 내리는 수레와 같습니다."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조엘 L. 휘튼·조우 피셔, 도서출판 기원전)
"우리는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빚을 갚지 못하면 또 다른 생애까지 짊어지고 가서 그것을 갚아야 합니다. 우리는 빚을 갚음으로써 진화합니다." (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 브라이언 와이스, 정신세계사 )
진화라는 것이 단지 인간의 물질적인, 유형적인 발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여러 생애를 거치는 가운데 어리고 자기 중심적인 인격에서 청년기의 인격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원숙한 인격으로 이어지는 긴 도정을 가고 있다.
인간이 윤회를 하는 것은 대우주의 정해진 법도이다. 인간은 우주와 더불어 우리 자신의 대영혼의 성숙을 위해 그토록 많은 생을 거듭 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꼭 인간세로 와야만 성숙이 가능한가? 영혼으로 있을 때는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티벳의 사자의 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일반인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다시 인간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왜냐면 인간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는 마지막 목적지에 이르는데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와이스의 피험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둘의 세계는 각각 다른 단계의 배움입니다. 육체 상태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우리는 성숙을 위해 여러 단계를 거쳐가야 합니다. 고통을 느껴야 해요. 영혼 상태가 되면 고통을 느끼지 않아요. 영혼의 상태는 재충전의 시간이에요. 성숙을 위해서는 아픔을 느껴야 해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