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율사--새시대를 알리다
[진표율사] 탄생에서 미륵불 친견까지
진표율사의 일대기는 가을개벽환란과 구원의 소식에 밀접히 관련이 있습니다. 또 정감록에선 진표율사가 이룬 업적과 연관되어지는게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서 천천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탄생,
진표율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통일 신라 성덕왕 때 완산주(完山州:전주) 벽골군(碧骨郡) 두내산현(豆乃山縣:지금의 만경) 대정리(大井里)에서 사냥꾼인 정(井)씨 성(姓)의 아버지 진내말(眞乃末)과 어머니 길보랑(吉寶郞)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표율사 태어날 때에 얼굴이 부처의 상(相)과 닮아서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천부적으로 총명하여 3살 때에 부친이 보는 앞에서 불경을 읽을 정도였다. 그의 가계(家系)는 향리에서 대대로 사냥을 하면서 살았다. 진표는 날쌔고 민첩하였으며, 특히 활을 잘 쏘았다.
송고승전(宋高僧傳) 중의 ‘백제국 금산사 진표전’에 의하면 12살된 사냥꾼 진표소년이 생명에 대한 고귀한 신비감을 체득하고 마침내 불문으로 출가하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구도의 계기,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고
어느 날 진표는 동네 아이들과 사냥하러 나가서 짐승을 쫓다 잠시 밭두덕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개구리가 많은 것을 본 진표는 그 개구리를 잡아 버드나무 가지에 꿰어 꿰미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사냥이 끝난 뒤에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물 속에 담가두었다. 그러나 사냥을 끝낸 그가 막상 집으로 갈 때는 다른 길로 갔기 때문에 그 개구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연꽃과 개구리
이듬해 봄, 진표는 또다시 사냥을 나갔다가 물속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를 듣고 그 물속을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30여 마리의 개구리가 꿰미에 꿰인 채 울고 있었다. 지난해에 꿰매인 개구리가 그때까지도 살아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소년 진표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생명의 신비와 생사 문제를 비롯한 인생의 본질적인 고민들이 시작된었다. 그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곧 개구리를 풀어주었다.
이처럼 진표의 출가에는 한 절실한 계기가 있었다. 울음 우는 개구리의 고통을 통해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는 아픔, 그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12세 소년은 구도의 먼 길을 떠나고자 결심했다.
불타는 구도의 길
더 이상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할 수 없음을 밝히고 아버지로부터 출가 허락을 받은 후 금산사로 들어간 진표는 숭제법사 강하로 가서 머리를 깎았다. 어느날 숭제법사는 진표에게 사미계법(沙彌戒法)을 주고 ‘공양차제법(供養次第法)’1권과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을 전해주면서 “너는 이 계법을 가지고 미륵, 지장 양성(兩聖) 앞에서 간절히 진리(法)를 구하고 참회하여 친히 계법(戒法)를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하라”고 하였다. 아울러 숭제법사로부터 부지런히 수행하여 1년이면 계(戒)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해들은 진표는 미륵님으로부터 직접 법을 구하여 대도를 펴겠다는 큰 이상을 가슴에 품고 전국 명산을 순행하였다.
숭제법사 이후 진표는 전국의 명산 대찰을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수행하고 공부에 전념하였다. 어느덧 율사의 나이 27세 되던 신라 경덕왕 19년(A.D. 760)에 쌀 두 가마를 쪄서 말린 식량을 가지고 부안 변산에 있는 선계산 부사의방(不思義房)에 들어갔다. 쌀 다섯 홉을 하루의 양식으로 삼고 한 홉의 쌀을 덜어내어 쥐를 기르며 미륵불상 앞에서 미륵불의 계법을 구하기위해 역사상 보기 드문 초인의 정열을 발휘하며 지극정성으로 구도에 정진하였다.
부사의 방장 그러나 온갖 정성을 다해 계법을 구한 지 3년이 되어도 천상으로부터 수기(授記 :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한 소식)를 받지 못하자 좌절과 울분을 참지 못해 죽을 결심을 하고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몸이 땅에 떨어지려는 순간,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진표율사를 손으로 받들어 바위 위에 살며시 내려놓고 사라졌다.
이에 용기를 크게 얻은 율사는 더욱 분발하여 생사를 걸고 3·7일을 기약하며 수행에 정진한다. 이 때 율사가 행한 수행법이 세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이는 자기 온몸을 돌로 찧으며 참회하고 수도하는 혈심수행법이었다. 망신참법보다 더 진실되게 자기의 생명을 아낌없이 바쳐 참회하는 법이 없다.
지장보살 3일만에 팔과 두 무릎이 뚫어져 피가 흐르고 힘줄이 드러나 떨어져났으나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수행에 돌입한지라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피범벅의 고통 속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용맹정진하였다.
7일째 되던 날 밤, 이 한 구도자의 지극한 정성이 마침내 하늘을 뒤흔들어 놓아 천상에서는 난리가 벌어졌다. 만신창이가 된 율사 앞에 불현 듯 지장보살(地藏菩薩)이 현신(現身)하여 금장을 흔들며 와서 그를 가호하여 떨어졌던 손과 발이 전같이 회복되었다. 지장보살은 율사의 손을 따스하게 어루 만지며 "참으로 지극한 정성이로다. 그대의 정성에 감동하여 이것을 내리노라"하면서 가사와 바리때를 내려주었다. 율사는 그 신령스런 감응에 용기백배하여 더욱수도에 정진했다.
참 잘 하는구나 대장부여!
마침내 21일이 끝나는 날, 문득 천안(天眼)이 열려 멀리 시방세계에서 도솔천의 하느님 미륵존불께서 지장보살과 수많은 도솔천중(兜率天衆)을 거느리고 오시는 모습을 친견하게 되었다. 미륵존불께서 율사의 머리를 어루만지시며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금산사 미륵불상
“참 잘 하는구나 대장부여! 이처럼 계를 구하다니 신명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구해 참회 하는구나!”
지장보살은 계본을 주고 미륵존불은 두 개의 목간자(木簡子:글을 적은 대 조각)을 주었는데 하나에는 제 9간자(簡子), 다른 하나에는 제 8간자(簡子)라고 씌어 있었다. 미륵존불은 율사에게
“제 8간자는 새로 얻은 묘계(妙戒)를 이름이요, 제 9간자는 구족계(具足戒)를 더 얻은 것을 이름이라. 이 두 간자는 내 손가락 뼈며, 그 나머지는 모두 침향과 전단향 나무로 만든 것이므로 모든 번뇌를 이르른 것이다. 너는 이것으로써 법을 세상에 전하여 남을 구제하는 뗏목으로 삼으라. 이 뒤에 너는 이 몸(육신)를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훗날 도솔천에 태어나게 될 것이니라.” 고 말하고 천상으로 환어하셨으니 이때가 바로 율사가 30세 되던 신라 경덕왕 21년(A.D. 762) 4월 27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