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모든 핵심 교리가 만들어진 종교회의에 관하여 핵심적인 내용을 연재합니다.
제1차 종교회의 (니케아) : 하느님이 되어 버린 예수 제2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 삼위일체를 결의 제3차 종교회의(에페소스) : 마리아를 하나님(신)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 제4차 종교회의(칼케돈) : 예수의 이중성에 대한 신조 도입 제5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 인류의 타락 누구의 죄인가? |
■ 테오도시우스 1세가 소집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제2차 종교회의를 소집한 주역은 교회가 대제(大帝)의 칭호를 봉헌한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였다.
이 황제는 도덕적 소질에 있어서 콘스탄티누스황제에 뒤지지 않았다. 역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가난한 백성들을 들볶는 악취미가 있어 하류층 백성들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부담케 하고 중세관리들에게는 고문을 예사로 자행시켰다. 뿐만 아니라 황제의 권한으로 만약 누가 빈민들을 숨겨주거나 했을 경우, 마을 주민 전체를 학살시키기도 했었던 폭군이었다.
경건한 종교회의가 있은 지 10년 뒤, 즉 기원 390년에는 데사로니카시 근처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시민 7천명을 참살시키기도 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때는 기독교에서 <할렐루야>라는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의 기도가 도입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테오도시오스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여 미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로부터 <대제>라는 호칭을 받았으며, 그는 암브로시우스로 하여금 타종교의 성소(聖所)들을 모조리 파괴시켜 버리게 하였다. 이 소행은 실제로 이단심문(異端審問)의 시조라고 불러 주어야 마땅한 처사였다.
■ 제2차 종교회의에서는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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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성부(聖父)·성자(聖子) 및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교리 |
종교적·정치적 동기가 함께 작용하여 그는 제국 내에서 신앙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열성적으로 노력했다. 379년 동안 니케아 신조의 신봉자들이 세력을 넓힘에 따라 그의 입지도 유리하게 되었다.
그러자 380년 2월 28일 테오도시우스는 교회 당국자들에게 아무런 자문도 구하지 않고 모든 신민들이 하나의 신조를 갖도록 규정한 칙령을 발표했다.
신학전문가들로부터 <산송장 회의(殘骸 會議)>라는 욕을 먹고 있는 이 모임에서 그 어느 것보다도 중차대한 신앙조항이 교회에 도입되었던 것이다. 성부,성자,성신(성령)의 삼위일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 삼위일체설은 지금까지도 교회의 주식(主食)이 되어 내려오고 있다.
이때부터 성부·성자·성신의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들만 가톨릭 그리스도교도로 간주되었다. 가톨릭이라는 호칭이 문서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칙령은 종교적 불관용의 원리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상훈 편저 : xbib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