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복’의 조짐 끼어…극복 위한 좋은 길 찾아야” | |
[한겨레가 만난 사람] 주역의 대가 대산 김석진 옹 * 미복 : 迷復·회복될 기미가 아득하다 | |
이인우 기자 강재훈 기자 | |
원로 역학자 대산(大山) 김석진(83) 옹을 만났다. 근대 주역의 대가 야산(也山) 이달의 문하이다. 스승 사거 후 간난신고 끝에 예순이 다 되어서야 주역 강의를 시작해 20여년 동안 수천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역학 분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이다.
시절이 수상하고 불안할 때는 앉은자리도 되돌아보게 되고, 돌아가는 판세가 궁금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에 기대어 천기를 느껴보고 싶은 미혹에 한번쯤 빠지게 되는 것도 달력을 바꾸는 이맘때의 심사이다. 하지만 작은 길흉화복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운세풀이로 족하지만, 천하의 일을 사람이 어찌 미리 엿볼 수 있을까? 주역(周易)은 동양사상의 시원이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도맥(道脈)이다. 일찍이 공자가 갈파했듯이 주역은 만물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원리를 담은 위대한 지혜의 소산이다. 요행 따위를 점치는 일로 격하되어 길거리의 호구지책이나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주역을 통해 세상사의 이치를 탐구하려는 인간의 소망은 5000년이 넘도록 꺼지지 않고 있다. 선생을 찾아 서울 대학로 흥사단의 동방문화진흥회를 찾아간 것은 마침 동짓날이었다. 양의 기운이 새롭게 일어나는 날이다. 작은 체구에는 팔순의 노경이 역력했으나, 눈빛과 목소리는 밝고 힘찼다. “나 같은 사람 인터뷰해서 신문사 위신이 깎일까 걱정”이라며 겸손해했다. 경인년(2010년)과 신묘년(2011년)에 우리나라가 겪었고 또 겪게 될지 모를 ‘미래’를 주역은 어떻게 나타내 보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경인년(庚寅年)은 60년 전에는 6·25가, 지난해인 2010년에는 6·25 이래 가장 첨예한 군사적 충돌이 남북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스승(야산)께서는 6·25가 나기 3년 전에 제자들과 가솔 등 300호나 되는 무리를 이끌고 대둔산에서 안면도로 들어갔어요. 경인년의 주역 괘는 ‘백마한여 비구혼구’(白馬翰如 匪寇婚?)란 구절이 있는 산화비(山火賁) 괘이고, 산화비가 변하면 ‘갑자기 일이 닥쳐 불타고 죽고 버려진다’(돌여기래여 번여 사여 기여·突如其來如 樊如 死如 棄如)는 중화리(重火離) 괘가 나와요. 선생님은 남북이 서로 뜻이 다르니 죽고 불타는 변괘가 작동할 것으로 보고 미리 대피를 한 것이지.”
“백마한여는 흰말이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이니 군대이고, 비구혼구는 적이 아니라 혼인하려는 배우자라는 말이지. 즉 군대를 몰고 쳐들어오는 적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혼인하려는 배우자라는 말인데, 당시 상황에서 남한과 북한이 혼인이 되겠어? 스승님은 그런 시대 분위기를 바탕으로 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죠.”
지난해 ‘괘’ 한반도 상황 그린듯 담겨
-그러면 지난해 경인년의 군사충돌은요? “괘가 같아도 시기와 상황이 다르면 풀이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주역을 공부한 사람은 늘 수시변역, 즉 때에 맞게 주역을 해석해야 합니다. 야산께서 6·25를 예견한 때와 현재 시대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남북이나 주변 나라 모두가 실제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충돌이 생겨도 소규모로 억제되는 거지요. 어쨌든 ‘소박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상대방에 달려가라(백마한여). 처음에는 도적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혼인하고자 하는 배우자(비구혼구)라네’라는 풀이를 잘 새겨야 합니다. 남북이 서로 의심을 풀고 입장을 바꿔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하면, 적이 아니라 혼인도 할 수 있는 동맹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안 되었으니,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처럼 ‘갑자기 들이닥치고, 불타고, 죽고, 집을 버리는(피난) 상황이 나타난 게 아닙니까?”
-주역의 괘가 마치 상황을 본 듯이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역책만 가지고 점괘를 다 풀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초씨역림>(焦氏易林)이라는 책이 있는데,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찾아와 초씨역림에 나온 경인년 괘에 대한 풀이를 부탁한 적이 있었어요. 그 책에서 경인년은 항괘(恒卦)의 ‘진항 흉’(振恒 凶)이야. 항구성이 없고 동요하니 흉하다는 거지. 남북관계로 보면 백년 천년 함께 가야 할 동족 간에 항구성을 잃었다는 거야. 또 ‘전무금’(田无禽)이라고 나와. 사냥터에 짐승이 없다는 말인데, 고대에 사냥은 먹고사는 문제지. 남북이 다 잘살아 보겠다고 하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단절이 되었잖아? 만나고 회담하고 하는 자리가 비어진 거야. 사냥터가 비었으니 무엇을 사냥할 거냐, 그런 얘기가 되고. 또 이런 구절이 나와요. ‘호불득남(狐不得南) 표무이북(豹無以北) 수욕회맹(雖欲會盟) 하수양절(河水梁絶)’ 여우는 남쪽을 얻을 수 없고, 표범은 북쪽에서 도모할 것이 없으니, 만나서 동맹하려 해도, 다리가 끊어졌네, 이런 말이잖아? 그런데 주역에서 꾀 많은 여우는 물을 상징하는 북방이고, 서방백호(西方白虎)라 표범은 서방, 즉 미국을 뜻해요. 그러니 북쪽(북한)은 남쪽(남한)한테 뭘 얻으려 애를 써도 얻는 게 없고, 서방(미국)은 북쪽(북한)에서 도모해야 하는데 아직 뾰족한 수가 없어요. 왜냐? 다리가 끊어져 있어요. 서로 단절되어 있으니 만나서 회담하고 동맹하고 싶어도 안되고 있는 거지. 이걸 풀어준 적이 있는데, 올해 그대로 나타났어요.”
-<초씨역림>이란 책이 아주 유명한 비결인 모양이군요. “<초씨역림>은 중국 전한시대 말기에 초연수라는 사람이 찬술한 역서라 전해지는데, 여간한 책이 아냐. 주역 64괘가 64번 변해 생긴 4096가지 점괘를 비유적으로 풀이한 것인데 웬만큼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그 뜻을 풀기 어려워요.”
-토끼해인 올해 신묘년(辛卯年)은 어떻습니까? “글쎄, 나한테 안 물어봐도 주역 책에 다 나오는데…. 신묘년은 지뢰복(地雷復) 괘인데, 복괘는 말 그대로 복귀, 원위치, 반복 등을 의미합니다. 원래대로 돌아가면 좋은데, 그게 안 되면 어렵고….”
-경인년을 풀듯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신묘년의 신은 여덟째 천간(天干)으로 땅(地)을, 묘는 네번째 지지(地支)로 우레(雷)를 뜻하니 지뢰복괘인데 신(8)묘(4)는 열둘이어서 한 괘 6효를 차례로 세면 마지막 여섯번째 상효에 이르러. 거기에 ‘미복 흉’(迷復 凶)이라고 아주 안 좋은 소리가 나와요. 회복할 기미가 아득하다는 거지. 이게 왜 그러냐? 원칙을 못 지키니까. 다 자기 앞의 이득만 생각하고 남의 처지를 몰라라 하니 회복이 안 되는 거야. 독선, 아집. 이게 다 미복에 해당하는 거요.”
-무엇이든 빨리 관계회복을 하는 것이 화를 예방하는 지름길이라는 거군요. “징조가 나쁘게 나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역이라는 게 변화잖아요? 나쁜 괘가 나와도, 그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대비하면 좋은 길을 찾아가도록 하는 게 역입니다. 신묘년의 변괘는 복괘 상효가 변한 산뢰이(山雷?) 괘인데, 이 괘는 먹이고 기르는 양육의 괘입니다. 미복을 슬기롭게 극복하면 후반기 가서 먹이는 괘에 이릅니다. 먹이는 것이 문제이니 경제 문제 아닐까요? 경제가 안정되면 따라서 다 안정되고, 안되면 다른 것도 불안해요. ‘유이 여길 이섭대천(由? ?吉 利涉大川)이라고, 모든 일이 먹이는 일에서 비롯되니 늘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다루면, 오히려 크게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어.” -남북문제로 보면 관계가 회복되어 (북한을) 먹이는 문제(대북 지원 또는 경협)가 대두되고 그로 인해 큰 강을 건너는(이섭대천), 즉 남북간에 정상회담 같은 큰일이 성사될 수도 있다, 뭐 그렇게도 들립니다. 김정은 세습으로 넘어가는 북한도 변화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래야죠. 그러나 북한은 막다른 골목이니, 우리가 먼저 변화를 선도해야지. 그래야 뭐가 생겨도 생기지.”
신묘년 독선·아집 못버리면 역경의 해 예상
-어쨌든 올해도 어려운 한해가 될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고 봐야지요. “선경삼일 후경삼일(先庚三日 後庚三日)이니 인묘(寅卯)에 사가지(事可知)”한다는 말이 있어요. 역에서 갑(甲)은 새로운 일의 시작이고 경(庚)은 변화의 시작이니, 경인년을 기점으로 전후 3년은 변화의 시기입니다. 그 변화가 끝나면 갑이 시작되는데 2014년이 갑오년입니다. 그래서 경인년과 올해 신묘년 간에 일어나는 일을 보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있는 거구, 경인년에 비롯된 문제는 갑오년에 가서야 결말을 보겠다, 그런 풀이가 가능해요.”
-그렇다면 2014년 전후에 이르면 우리나라에 큰일이 있겠군요. “무엇이 된다 안 된다가 아니라, 이치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건 뭘 맹신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또는 안 되도록 잘 준비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마음자세와 실력을 갖추는 것이지. 경제도 그렇고 남북통일도 그렇고….”
-이제 그만 괴롭히겠습니다. 유명한 야산 이달 선생이 스승이신데 야산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허허. 그분 얘기를 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지. 내가 쓴 책이 있어요. <스승의 길 주역의 길>이라고.” -야산이 별세한 뒤에는 혼자 공부하며 생활고 때문에 고생도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거지나 다름없었지. 시골서 글선생 노릇 하며 밥을 얻어먹기도 했으니.” -점집이라도…. “점이라도 쳐서 벌어먹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그만뒀어. 공부한 자존심에 점쟁이 소리 안 들으려구. 만약 그때 점치는 길로 나갔다면 지금의 나는 없지. 그 길과 이 길은 다른 길이야.” -뭘로 생계를 삼았나요? “시골에서 한약방을 했어요. 주역 공부 하면 의약 공부는 저절로 되어서 장사도 제법 되었어. 하지만 그것도 무면허라 오래 하진 못했고. 그러다 한문 강의를 하다가 소문이 나면서 58살부터 본격적으로 주역 강의를 시작했어요. 내게 한학을 가르치신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인기아취(人棄我取)라고. 다들 신학문을 좇아 한문을 버릴 때 너는 그걸 취하라고. 그러면 언젠가는 한문 한 글자에 천냥을 받을 날이 올 거라구. 지금 와서 보니 할아버지의 말씀이나, 스승께서 내게 대산이란 호를 주신 거나 다 깊은 뜻이 있었던 것 같아. 소학교밖에 못 나온 내가 갖은 풍상을 겪다가 60이 다 되어 남들에게 주역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걸 보면…내가 서울대학을 나왔다 한들 지금같이 (학문적으로) 높은 대접을 받겠습니까?”(옆에 있던 춤꾼 ‘제자’ 이애주 교수가 선생님에게 호를 지어 받은 이가 3, 4천명이요, 선생의 강의를 듣고 감복해 제자를 자처하는 이가 또한 4, 5천명이라고 자랑했다.)
-주역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주십시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생각하세요. 주역의 역(易)은 ‘바뀔 역’이면서 ‘쉬울 이’잖아. 어떤 이들은 아무나 주역 하냐고 큰소리를 하는데, 야산의 가르침에는 그런 거 없어요. 주역을 신비주의로 접근하면 안 돼요. 고대에 주역은 점치는 일이었지만, 후대인이 볼 때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높은 공부라는 점을 강조하셨어요.”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신 집중이지. 만물의 이치를 공부하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되겠어요? 정신 수양이 되어 좋고. 주역은 동양철학의 최고봉이며, 유학의 으뜸 경전입니다. 동양문명권은 한·중·일 삼국인데, 21세기 후천시대에는 우리나라가 중심이 될거야.” -그러니 더욱 마음이 동합니다. 선생님. “주역 공부는 진실되고 정성스러워야 해요. 사특한 마음으로 엿보려 해선 안 돼요.”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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