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신동(神童)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렇다고 성장하여 장원급제를 하거나 벼슬을 탐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한때 그가 일종의 천문학 교수인 종6품의 관상감(觀象監)이란 벼
슬을 하게 된 것도 역학(易學)·복서(卜筮)·상법(相法)·천문(天文) 등에 남다른 박식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이 어린 시절에 불영사(佛影寺)란 절을 갔을 때 일이다. 스님 한 분이 선생을 보고 깜짝 놀라며 천기(天氣)를 받아 눈에 광채가 번뜩이
고 있음을 보자 '아! 그놈 참 영특하게 생겼구나.' 스님의 이 같은 말을 듣고 있던 선생이,
'그럼, 스님 저하고 바둑 한 판 두지 않겠습니까?'
하고 청하자. 스님은 마음 속으로, '바둑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운하다 할 정도인 내가……어린 네가 아무리 총명하다고 해도 나를 감히 이길 수 있겠느냐?' 이런 마음으로 어린 남사고에게 쾌히 응락을 했다.
두 사람은 절 근처에 있는 부용봉(芙蓉峯)에서도 기암절벽이 수려한 노송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 광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태고 때부터 아름다운 산세에 몇 백년동안 만고풍상을 다 겪으면서 꼬불꼬불하게 자라난 큰 노송 밑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스님과 어린 나이인 남사고선생이 마주하여 바둑을 두는 모습은 참으로 돋보이는 아름다움이었다.
처음에는 이내 승부가 날 것으로 생각했던 노스님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수가 남사고만 못하다는 것을 알고서 점점 불안해졌다.
남사고는 웃음을 띄면서 장난하듯이 쉽게 두고 있어도 승세를 계속 유지하게 되자 노스님은 망신스럽다는 생각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결국 바둑은 나이 어린 남사고가 이겼다. 화가 난 노스님은 갑자기 산천이 떠나 갈 정도로 큰 소리를 치며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 땅 속에서 머리와 콧등을 먼저 보이며 큰 황소처럼 변장하여 나타나면서 남사고에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나타나도 무섭지 않느냐?' 고 하자 남사고는 태연한 모습으로, '뭐가 무섭습니까? 본래 모습은 스님이었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노스님은 자신이 어린 남사고와 힘을 겨루는 못난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했다.
그 후 노스님은 남사고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고 자신이 사부로부터 전수를 받은 천문지리에 관한 각종 비록(秘錄)을 남사고에게 전해주었다.
남사고는 심산유곡 깊은 동굴에 들어가 그 비전을 해독하여 능히 천기(天氣)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돼 개인에 관한 미래는 물론이고 나라에 관한 미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언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와 같은 예언을 비록(秘錄)해 놓은 책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격암유록(格庵遺錄)」이었는데 그 유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어 새삼 놀라움을 전해주고 있다.
백호(白虎), 즉 호랑이 해 중에서도 흰색을 상징한 경(庚:금색 같은 흰색인 데서 연유)자가 들은 해, 그러니까 6·25사변이 일어나던 1950년에 병화(兵火)가 있을 거라고 했으며, 더욱 신기한 것은 피난처가 지금의 부산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점이다.
이 밖에도 '목인비거후 대인산조비래(木人飛去後 待人山鳥飛來)'라 했는데, 이를 좀더 자세하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신비스러움을 알 수 있다.
목인(木人)은 박씨(朴氏)성을 말하고 비거후(飛去後)는 죽은 뒤란 의미이므로 박씨를 가진 사람이 죽은 후에는 대인산비래라 하여 최씨(崔氏) 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였다. 왜 하필 최라고 하느냐는 것은 대인산(待人山)은 최자(崔字)의 좌측에 있는 사람인자(人字)와 상층부에 있는 산자(山字) 그리고 새 조자(鳥字) 새 추자(추字)와 같으므로 이를 전부 합치면 최씨(崔氏)가 되고 비래(飛來)란 말은 다가온다는 뜻이 된다.
그러한 연유에서 그랬는지 앞으로 또 그러한 사실이 있을지는 확실치 않으나 5·16군사혁명으로 박정희(朴正熙) 장군이 나라를 다스렸고 그 다음으로는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출현하게 되었다.
남사고선생은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죽음을 예언하면서 선조(宣祖)가 왕이 된 후에 임진왜란이 있게 될 것이며, 학풍의 대두로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하는 붕당이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특유의 파자법(破字法)으로 동인들이 살고 있는 낙산(駱山)과 서인들이 살고 있는 안산(鞍山)을 기준하여 붕당들의 미래를 정단(正斷)해 보이기도 했다.
이른바 '낙산(駱山)은 낙자(駱字)가 마각(馬各)을 합친 자이므로 말(馬)을 타고 가다 떨어(各)진 형상으로써 처음에는 동인들이 국운을 좌지우지하는 대권의 무리가 되나 결국은 각각(各各) 생각이 달라짐에 따라 분열되고 서인을 상징한 안산(鞍山)은 글자 그래도(鞍山) 바꿀 혁자(革字)에 편안 안자(安字)를 합친 까닭에 새로운 개혁 정책을 펴 안정의 대권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우리 온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이 언제이겠냐는 시기도「격암유록」에 비록(秘錄)하였으므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통합지년하시 용사적구희월야 백의민족생지년(統合之年何時 龍蛇赤拘喜月也 白衣民族生之年)'이라 하여 통일의 그날이 언제인가고 물음에 대한 답이 씌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용(辰)이나 뱀(巳)의 해가 될 것이며 붉은 개(戌)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천도(天道)와 지도(地道)의 신비를 헤아린 선생이 어느 날 별을 보고 자신의 수명이 다 되었음을 알고 객사나 면해볼 생각으로 관상감이란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오는데, 귀향 길에서 그만 죽게 되니 세상사람들은, '천문지리에 능통한 남사고선생도 인간의 수명만큼은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하면서 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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