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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기 까지에는 6천만년이 걸렸다. 개미의 조상은 1억 5천만년 전에 살았는데 현재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이에 비해 인류는 고작 200만년 동안에 해상과 육상, 공중뿐만 아니라 우주를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획기적인 진화에 비해 인류의 친척쯤 되는원숭이들이 아직도 나무에서 나무로 뛰어다니고 있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같은 사실로 보아 인류는 존재가 밝혀지지 않은 다른 문명, 즉 인류의 조상보다 수백만년이나 더 나이를 먹은 다른 은하문명에 의해 특수한유전적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진화의 속도가 촉진되었다고 가정할 수도있는 것이다.    특히 인류의 기억속에 남겨진 문명의 잔재를 살펴보면 인류 스스로의 힘만으로 진화하여 왔다는데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게 된다.

인류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고작 6천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대 인도의 브라만은 우주의 존속기간을 43억 2천만년으로 계산하였다. 레바논의 드루스파는 천지 창조의 시작을 34억 3천만년 전으로 설정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63만년 동안 천체 관측의 기록을 계속하였다.
고대 그리이스의 천문학자 하파프코스는, 앗시리아의 연대기는 27만년 전으로 소급된다고 하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게네스는 이집트의 천문학 기록은 B.C 49219년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그곳에 373회의일과 832회의 월식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비잔틴의 역사가 싱켈루스는 이집트의 여러 파라오의 연대기는 36525년 동안 모든 일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카펠라는 이집트의 현자들이 세계에 지식을 나누어 주기 전에 4만년이상 몰래 천문학을 연구하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바빌로니아아의 태음력과 이집트의 태양력의 시작은 기원전 11542년에 일치되어 있다. 인도의 달력은 기원전 11652년부터 시작되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아틀란티스가 가라앉은 시기는 기원전 9850년이라고 했는데 조로아스터교의 책에는 시간의 시작이 기원전 9600년에 있었다고 하였다.
보통 나일강 유역에 최초로 국가가 세워진 연대를 기원전 4천년으로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와 동시대 사람들은 1만7천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이집트의 고문서를 보존하고 있다고 하였다.
게다가 이집트의 역사를 서술한 이집트의 신관 마네톤은 그의 저서에서 기원전 1만 7천년보다 훨씬 오래된 책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리고비잔틴의 역사가 스넬리우스는 이집트의 신관들이 3만 6천 5백 12년 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쓴 {고대연대기}라는 고문서에 대해서도 썼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게네스 라엘티오스는 알렉산더 대왕보다 4만 8천 8백 6십 3년이나 오래된 기록을 이집트의 신관들이 보관하였다고 썼다.
이러한 사실을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약 5만년전에 인류가 벌써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문자가 사용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문명이 번창하지 않으면 안돼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현 인류의 문명의 역사는 고작 6천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 이전의 역사는 역사라고도 할 수 없는 원시상태였다고만 배워왔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나에 대해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증거들은 최소한 인류의 문명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상으로 오래 되었음을 입증한다. 또한 잊혀진 문명의 잔해들이 보여주는 문명 발달의 정도는 현대 인류에게 과거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확한인식을 요구한다. 현재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이 고대에 존재했었고, 어떤 이유로 일순간에 멸망해 버렸다는 증거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기 때문에 적어도 현대 인류가 6천년동안 이룩해 온 문명의 성과에 대해 오만해져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고대문명에서 읽게 된다.
즉, 현재의 인류문명이전에도 고도로 발달했던 고대문명이 다수 있었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 후예들이라는 것이다. 그럼 그 문명의 출발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 그것이 앞으로 말할 외계의 문명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2) 잊혀진 황금시대

안데스 산중에는 티아와나코라는 폐허가 된 고대도시가 있다. 이곳은 해발 4천미터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해발에서는 인간이 생활하기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이곳에서 항구의 흔적이나 조개껍질 등 바다동물의 화석 따위가 발견되었다. 
즉 이 도시가 일찍이 바다근처에 있었거나 바다와 같은 높이에 있었음을 말한다.
이 티아와나코의 근처인 티티카카호수에서는 깊이 8미터 지점에서 하나의 무게가 200톤이나 되는 거대한 돌덩이로 만든 벽의 파편과 건물 파편 등이 인양된 바 있었다. 벽은 포장된 도로 양측을 따라 1킬로 이상이나 뻗어 있었다.
타이와나코의 고고학연구소 소장 루벤윌레이 교수는 그 유적을 귀족의장례식이 행해졌던 해안사원이라고 단정지었다.
인도에는 흑파고다라는 이름의 사원이 있는데 이 사원의 높이는 75미터이며 지붕은 2,000톤이 넘는 돌로 만들어져 있다. 이 정도의 무게를들어 올리려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기중기의 10배 이상의 힘이 있어야움직일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건물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이다. 이 등대는 기원전 3세기경에 프롤레마이오스 황제의 명령에 의해 팔로스 섬 위에 세워졌는데 그 높이가 150~200미터에 달하였다. 대략 16층 정도의 건물의 높이와 맞먹는 셈이다. 인류가 이렇게 높은 건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건축술을 익힌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외에 소멸된 고대문명의 거석 건축물은 많다. 이집트의 피라밋, 레바논의 바르베크에 있는 4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쥬피터 신전의 토대, 영국의 스톤 헨지의 규질사암열석군, 그래스톤베리 주위에 있는 30마일에달하는 석조 12궁 칼렌더, 바다 속까지 뻗어 있는 프랑스의 카르나크의 거대한 입석열주, 페루의 삭크사이와만에 있는 거대하지만 완전히 다듬어 만든 성채등이 있다.

고대 마야인들은 수레바퀴를 알지 못했으며 도자기나 철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정확하게 천체의 회전 주기를 알고 있었다. 지구가 태양주위를 회전하는 시간은 그레고리오력에 의하면 365.242500일인데 비해마야인들은 365.24219일이라고 계산하였다. 대단히 정확한 천문기기를갖춘 오늘날에는 1년의 길이를 365.242198일로 보고 있다. 또한 그들은태음력의 길이도 0.0004일의 오차밖에 나지 않을 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러한 정확한 고도의 지식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이 대단히 먼 과거로부터 지식이 축적되었음이 틀림없다.
디오게네스 라엘티오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의 역사에는 일식이373회, 월식이 832회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 횟수의 일식과 월식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년 이상에 걸친 관측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천체관측이 시작되었음을 밝히는 자료도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춘분 무렵에 태양은 별자리중 물고기자리 속에 있다. 그러나 2천년 전에는 양자리속에 있었다. 이렇게 태양은 2만 5천 9백 20년에 걸쳐서 천체를 일주한다. 그런데 2만 5천 9백 20년 이라는 숫자를 수메르의 수많은 고문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수메르인들이 2만 5천 9백여년 이상 천체관측을 했음을 알리는 간접적인증거가 된다.
또한 18세기에 {걸리버 여행기}를 쓴 영국소설가 스위프트는 화성에 2개의 위성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는 고대 학문과 고대서적 및 사본에대한 관심이 대단하였고, 이것들을 연구하는 도중에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 당시에는 태양계의 행성에 위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명히 볼 수 있는 성능 좋은 망원경도 없었다. 이후 156년이 지난 1877년에야 천문학자들에 의해 이 사실이 증명되었다. 나아가 스위프트가 2개 이상의 회전시간과 성격에 대해 밝힌 내용은 후에 얻어진 정확한 정보와 많은 유사점을 가졌다.
소위 보이니크 사본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뉴욕의 고대 유물 수집가 보이니크가 로마에 가까운 어떤 옛성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는 상자속에서 이 사본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 사본에 붙어있는 종이에는 아리송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 이같은 스핑크스는 그 주인 이외의 명령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고. 이 사본은 암호해독가에 의해서도 컴퓨터에 의해서도 완전히 해독되지 못하였다. 이 사본은 13세기 혹은 15세기에 씌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알아 볼 수 있는 내용만으로도 식물학적, 천문학적, 생물학적 문제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 중에는 현미경을 사용해야만 관찰할 수 있을 정도의 잎이나 뿌리의 횡단면을 그린 그림이 있는가하면, 페가수스의 중심과 안드로메다의 띠와 카시오페아자리 등에 대한 그림이 있다고 한다. 1920년대에 이 그림을 연구한펜실베니아 대학의 둘리틀은 그 그림이 틀림없이 성운을 표시한다고 단정짓기에 이르렀다.
* 콜린윌슨의 세계불가사의백과 참조

1946년 프랑스 인류학자 그리올과 디틀렌은 당시 서부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반디아가라 고원과 홈보리산 일대에 살고 있던 22만 명 정도의도곤족과 인근의 세 종족의 전설을 4년여간 수집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1951년 {수단 계통의 시리우스 시스템}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보고는 1976년 언어학자이며 천문학자인 템플에 의해도곤족의 전설이 천문학적으로 입증되었다. 도곤족은 50년마다 한 번씩시구이 축제를 벌인다. 이 축제의 날짜는 포 톨로라는 별을 보고 정하는데, 이 별은 약 50년을 주기로 제자리에 돌아오는 별인 것이다. 포라는 말은 도곤족이 먹는 곡식중 가장 알맹이가 작은 것의 이름이다.
그들이 기다란 호스 같은 것을 돌리며 그들 선조의 소리라고 하며 내는 소리는 UFO 가 내는 소리라는 것을 그방 알아챌 수 있다.
도곤족에 대해서는 리더스다이제스트사의 세계의 진문기담 참조.

(포는 남쪽 하늘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별을 50년에 한 번씩 돈다. 그러나 그 별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별이다. 포는 별들중에서 가장 무거운 별이며 사람의 눈에 잘 보이는 별의 주위를 돌면서 그 별의궤도를 결정하는 별이다)
우리는 남쪽 하늘에서 제일 밝은 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일명 개의별, 천랑성이라고 불리는 시리우스이다. 고대부터 알려진 시리우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19세기의 천문학자 베쎌은 1834년 시리우스의 궤도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그 후 12년에 걸쳐 시리우스를 관찰한 결과 시리우스의 궤도가 미지의 천체의 인력으로 주기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미지의 별에 시리우스 -B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상되는 위치를 끈질기에 찾았지만 당시의 최고 성능을 지닌 망원경으로도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1862년에 대형 망원경으로 제작으로 유명한 클라크에 의해 제작된 73cm짜리 망원경으로 확인되었다. 바로 이 별이 도곤족들 사이에서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별, 포이다.
오지에 사는 이들에게 누가 천문학적 지식을 알려 주었겠는가 ? 그들의 추장 오고템메리는 자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놈모의 후예라고 한다. 하늘 나라에서 놈모는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의 섬유를 가지고 지구에 왔다고 한다. 그는 땅을 만들고 식물과 동물을 만든 다음 사람을 창조했는데, 이들로부터 지상의 여덟개 종족이 생겨났으며 그들은 끝없이 오랜세월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의 사실이라면 그들은 시리우스-B에서 온 외계인의 후예라는 말이 된다.

시리우스 별까지의 거리는 7, 8 광년이다. 현재의 과학으로도 시리우스까지의 비행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곤족들은 놈모를 기리는 축제를 50년마다 벌이고 있다.
1633년 종교재판의 재판관들은 고문실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취조하였다. 그것은 갈릴레이가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지구가 우주공간을 회전하는 구라는 사실은 이미 인류사의 여명기에도인도, 이집트, 아메리카 각지의 경전과 고문서 속에 씌어 있었다. 특히이집트인들은 이러한 사실이외에 지구가 다른 행성들과 같은 법칙에따라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천문기기나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지식도 없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플라톤은 지구는 공과 같고 그것이 회전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있다고 말했으며, 유대의 경전 {카바라}에는 인간이 사는 지구는 원처럼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어떤 지역이 밤일 때 다른 어떤 지역은 낮이라고적혀있고 그 근거로 태고의 서적을 들고 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지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는 로마 교황에게 제출한 논문의 서문에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고대인들이 쓴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고대인들은 조수의 간만이 달과 관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 셀레우코스는 바다의 간만을 달의 인력에 의한 것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중국에서도 해면 상승의 원인이 달의 인력이라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았다. 로마의 시저도 만월 때 조수가 만조가 된다고 기록하였으며, 영국에 상륙하기 위해 조수가 만조가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16세기의 위대한 천문학자 케플러가 조수의 간만은 달에 의해일어난다는 이론을 발표했을 때 그는 몹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친척 중 한 사람이 마녀라는 이유로 화형에 처해졌고 그의 어머니는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죽었기 때문이다.

< 인디오의 경전 >
슬라브인들은 먼 옛날 이 세상에는 물밖에 없었고 훗날 땅이 생겼다고 하였다. 인도의 {리그베다}도 세계는 우주를 가득 채운 엄청난 물에서 탄생하였다고 썼다. 중국의 고문서는 태초에 땅은 모두 물로 뒤덮여 있었고 후에 이 대양에서 생명이 탄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남북아메리카의 인디오의 경전 {포플 부흐}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한 마리의 동물도 없었다. 새도 없었다.
물고기도, 게도, 나무도, 돌도, 계곡도, 풀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하늘뿐이었다. 육지의 표면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차가운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하늘뿐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세계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달력에도 이러한 일치가 나타난다. 수메르, 바빌론, 고대이집트, 고대 인도에서는 1년을 12개월로 나누었다. 그리고 마야에서는1년이 360일이었고 이밖에 불행의 날, 이름이 없는 날로서 5일이 더 있었다. 이 동안은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무엇이든 나쁜 짓을 할 수 있었다. 이와 똑같은 관습이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뿐만 아니라 인도에도 있었다.

3) 황금제국을 찾아서
이밖에도 불가사의한 사실들이 있다. 그것은 지도에 관한 것이다.
지도는 알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과거 대륙의 모습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남겨진 지도에서 보면 그 제작자들은 현대인조차 20세기 중엽이 되어서야 발견한 곳을그려 놓았다.

< 남극대륙이 그려진 지도 >
1559년에 터어키인 하지 아하마트의 지도에는 북아메리카의 해안선이대략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1532년에 만들어진 오론티 피나우스의 지도에는 남극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1513년에 만들어진 피리 레이스의 지도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룩한 지도이다. 이 지도에는 대서양의 반대측에 있는 쿠바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카리브해의 섬들이나, 중미 안데스 산맥을 포함한 남미대륙의 동서연안, 심지어 남극대륙의 일부까지 그려져 있다. 1528년에 제작된 그의 지도에는 그린랜드,뉴펀들랜드, 캐나다의 일부, 북아메리카의 동해안의 플로리다가 나타나 있다. 그보다 묘한 것은 그의 지도에는 아프리카의 바로 밑까지 연장되어 전혀 이름이 없는 남극대륙을 표시하고 있으며, 현재는 빙하에 파묻힌 산들의 높이까지 표시하였는데 아직까지도 그 산들의 높이는 측량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햅굿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남극대륙의 지도는 정말로 얼지않았을 때에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 지도에 붙은 설명 가운데에 이 지도의 원본의 출처를 알렉산드리아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지도는 모두 중세에는 발견되지 않았고 수세기 후에나 발견된 육지와 대륙에 대해서 상당히 정확한 윤곽을 묘사하였다.
또한 이러한 지도의 작성자 자신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보관된 지도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지도를 베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는 고대 지도의 작성자들이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알고 있어서 경도와 위도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세계의 곳곳을 여행하였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더욱이 오론티의 지도와 현대지도를 비교해보면 전자에는 남극에 많은하천과 그것이 흘러들어가는 피요르드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남극대륙에는 하천이나 피요르드가 전혀 없다. 대신에 오론티의 지도에서 하천이 있던 부분에 대양으로 천천히 흘러들어가는 빙하가 있다. 이 사실은 오론티의 지도가 작성된 때는 빙하가 생기기 이전의 시대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시기는 기원전 4천년경 남극 대륙이 얼음에 완전히 뒤덮이기 전이라고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수수께끼의 지도들로부터 많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미지의 문명이 존재했었고, 대양을 향해할 수 있는 배를 가지고 있었으며, 남극대륙과 그린랜드의 지도 제작에 필요한 천문학, 항해술, 수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옛 극지 탐험에 사용된 배는 크고고해야 했으며 고대의 이집트, 페니키아, 그리스 또는 로마가 소유하고 있던 배보다 훌륭해야 하였다. 이들 지도들은 이미 알려진 여타의 문명의 발생보다 훨씬 오래 전에 참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암시해 주는 증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야금술의 등장에도 의문점이 있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청동은 그 이전 단계인 구리시대가 거의 없이 전 유럽으로 퍼졌다. 최초의 청동제품은 매우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졌으며 사람들이 이 기술을 단계적으로 조금씩 익혀나갔다는 흔적도 없다. 멕시코에서도 유럽의경우처럼 청동의 생산이 복잡한 고도의 기술적 수법을 동반한 형태로 갑자기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 야금술과 금속 가공기술을 항상 자신의 힘으로 단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때때로 완성된 형태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는 가설을 성립케한다.
이러한 가설을 뒷바침하는 사실 중의 하나는 청동을 최초로 이용한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는 정련에 필요한 원료가 없었다는 점이다. 원료도 없는 상태에서 청동을 발명할 수 있었겠는가. 이 때문에 이들 문명국가들은 아연을 얻기 위해 카프카즈나 피레네 반도와 같이 엄청나게 먼 곳까지 원정대를 파견하였다. 이보다 더 먼곳으로는 브리튼제도가 있었다. 페니키아인이 브리튼제도를 아연의 섬이라고 부는 것도이 때문이다

< 고대의 전지 >
고대 수메르의 유적인 셀레우키아의 폐허에서 고고학자들은 유약을 바른, 높이 10센티미터의 작은 점토로 만든 그릇을 발견하였다. 그 속에는 외형상 산에 의해 부식된 것으로 보이는 철제 축과 납땜으로 용접된구리로 만든 실린더가 들어 있었다. 이런 출토품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 수수께끼의 그릇이 일종의 전지일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행해졌다. 끈질긴 연구 끝에 이 그릇을 본래 형태로 복원하자 놀랍게도 추정한대로 전기가 발생하였다. 고대 인도 문헌 중 {아가스티아 삼히타}에는 전지를 만드는 법이 적혀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아주 깨끗하게 씻은 구리판을 도자기의 그릇속에 넣어라. 그것을우선 황산구리로 적시고 다음에 젖은 톱밥으로 덮는다. 다음에 편극을피하기 위해 톱밥위에 수은과 화합시킨 아연의 엷은 판을 덮는다. 그접촉은 미트라-바루나(Mitra-Varuna)라고 부르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 흐름에 의해 물은 프라나바유(Pranavayu)와 우다나바유(Udanavayu)로분해된다. 100개의 항아리를 연결하면 대단히 활동적이고 유효한 힘을얻을 수 있다. "

< 고대의 알루미늄 >
1963년 남아프리카의 프레토리아에서 열린 가로 조명과 교통에 관한 회의에서 다우니라는 사람은 뉴기니의 서반부, 이리안에 있는 빌헬미나산 부근의 정글속에서 20세기의 것과 비교하여 우수하지는 않지만 같은정도의 인공조명계기를 가지고 있는 한 마을을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발견으로 그동안 풀 수 없다고 여겨져 왔던 문제를 설명할 수있게 되었다. 그것은 4세기경의 유명한 중국장수 주처의 묘에서 나온장식품과 관련된 문제였다. 이 묘에서 나온 장식품 중의 하나를 스펙트럼 분석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결과가 나왔다. 실험은 틀림없었다. 이장식품은 구리 10퍼센트, 마그네슘 5퍼센트, 알루미늄 85퍼센트의 합금제품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믿기 어려웠던 것은 알루미늄이었다. 알루미늄이 처음으로 추출된 시기는 전기분해법이 도입된 1808년이었다.

< 고대의 비행기 >
또 어떤 출토품들은 현대의 발명품을 모방해서 만든 것 같아 보인다.
그중에서도 현대의 삼각날개 비행기와 흡사한 황금제 축척의 모형이 발견된 것은 1천 5백년 전 콜롬비아의 한 묘지에서였다. 이보다 더 오랜고대 이집트에서는 글라이더 모형이 발견되었다. 중국의 시인 굴원은 고비 사막의 하늘 높이 서쪽으로 만년 눈으로 덮여 있는 곤륜산맥을 향해 비취의 전차로 비행한 것을 기록하였다. 그는 그 비행기가 어떻게 바람과 고비 사막의 모래 먼지에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또 어떻게 자기가 항공 측량을 하였는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림설명: 콜롬비아 보고타의 황금비행기
서기 1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기술자 해론은 터빈과 제트엔진 양쪽 원리를 구체화한 증기 엔진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적어도 주행 거리를 기록하는 속도계를 헤론이 발명한 것은 사실이다. 한편 에게해의 해저에서 건져 올린 청동제의 물체는 몇년간의 연구 끝에 천문계산기로 판명되었다. 굴착기로 보이는 톱니바퀴, 차륜이 붙은 황금제 모형이 파나마에서 발견되었다. 확대렌즈가 고대 앗시리아의 유적과 에쿠아도르의 콜롬부스기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2세기경 이집트의 사원에는 성수자동판매기가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성수의 양은 화폐투입구에 넣은 화폐의 무게에 직접 관련이 있었다. 이밖에 제우스 사원에도 꼭같은 자동제어 성수판매기가 있었다. 이밖에 자동기계들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 테베의 사원에는 이야기도 하고 제스처도 할 수 있는 신들의 동상이 있었다. 교황 실베스터 2세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청동의 자동기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항성과 행성의 어떤 위상에서> 이 교황에 의해 제작 되었다. 이것은 정치와 종교에 관한 중요사건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마법의 두뇌는>는 교황이 죽은 다음 처분되었다.레겐스부르크의 주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화학, 의학, 수학 및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20년 이상 걸려 안드로이드(Android)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이 자동기계는 별에 의해 선택된 금속과 미지의 물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기계는 걷고, 이야기하고, 가정의 잡일을 하였다. 알베르쿠스는 그의 제자 아퀴나스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안드로이드가 그들을 돌보아 주었다. 어느날 말하기 좋아하는 수다와 험담으로 아퀴나스를 화나게 하여 아퀴나스가 망치로 깨뜨려 버렸다.콤퓨터에 관한 기록도 있다. 아테네에 있는 그리스 국립 고고 박물관에는 1900년에 안티키테라 섬 부근에서 해녀가 발견한 부식된 금속체 단편이 몇 개 있다. 그 기계의 복잡한 눈금판과 톱니바퀴는 고대 그리스의 어떤 제품과도 같지 않았다. 그 기계와 같이 발견된 항아리에 새겨진 문자를 보면 이것은 기원전 65년경에 제작된 것이다. 그것은 박물관에 아스트롤라베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1959년 뉴저지의 프린스턴 대학 부속연구소에 근무하던 과학자 프라이스가 감정한 결과 현대 컴퓨터의 선조라고 단정짓게 되었다.
텔레비젼의 선조라고 불릴만한 것도 있다. 소련작가 막심 고리키의 경험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유물론자이기도 한 그가 20세기 초 카자흐 지방에서 인도인 요가 수행자를 만났다고 한다. 인도 수도자는 앨범을꺼내 인도의 풍경을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고리키가 앨범을 펼치자 엷은 구리판 위에 인도의 아름다운 도시와 사원의 경치가 그려져 있었다고한다. 그런데 인도수도자가 앨범을 받아 입김을 불고는 다시 보여주었을때 앨범 속에는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구리판뿐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들이 비행기, 계산기, 굴착기, 전기, 컴퓨터, 텔레비젼 등이라고 알게 된 것은 그와같은 것들이 정식으로 발명되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뿐만 아니라 아주 먼 옛날 사람들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때로는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고대 로마인은 복잡한 교통 시간에는 어떤 주요도로를 일방통행으로 제한하였다. 폼페이에서는 교통의 번잡을 피하기 위해 손을 흔드는 교통순경을 채용하였다. 바빌로니아에서는 2천 5백년 전에 도로표지가 사용되었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는 주차 금지표지가 사용되었다. 안티오크는 고대 도시 중 처음으로 가로등을 설치한 도시이다.
아즈텍인들은 원활한 교통의 소통을 위하여 영구적으로 변색하지 않는착색 끈을 포장도로의 중간에 박아 넣었다. 이것은 오늘날 페인트로 그려놓은 차선의 역할을 하였다.

4)고대의 지식들
어떤 민족도 고대 잉카인이 만든 것 같은 5천km의 고속도로를 건설하지는 못하였다. 이 고속도로는 좁고 험한 계곡을 건너, 현채도 사용되고 있는 굴을 지나 산맥을 관통하고 있다. 파키스탄 및 모헨조다로 하라파와 칼리방카의 발굴은 4천 5백년 전에 도시계획이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들 고대 도시의 도로는 똑 발랐고, 구획i 직사각형이었다. 훌륭한 수도와 하수도도 발견되었다. 이들 도시에서 사용된 벽돌은 가마에서 구워낸 것이었다. 백년 전 영국인들은 이 벽돌을 카라치와 라호르 사이의 철도 건설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유럽에서 17세기말에 발명된 중앙 난방이나 온수 난방은 이미4천년 전 한국에서 온돌이라는 형태로 존재해 왔다. 석조의 하수구와 도자기제의 파이프를 가진 중앙집중 시스템의 가정용 수세식 변소는 4천년 전에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시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었다. 오리건 대학의 크레스먼 교수팀은 네바다 i주 동쪽의 라모스 동굴에서 섬유로 짠샌들 200켤레를 발견하였다. 어떤 훌륭한 기술자의 손으로 짜여진 것인데, 마이애미에서 오늘날 신고 다니는 비취샌들로 오인할 정도였다. 탄소측정 결과 이 샌들의 연령은 9천년을 훨씬 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렇게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 것인가 ? 그 문명은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 또 왜 절멸한 것인가. 이에 열거한 증거들은 인류의 여명기에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이 존재했었음을 분명히 알려준다. 만약 그러한 i문명이 존재하였다면왜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는 "고대의 지식들이 일차적으로는 지식을 담당하던 사람들에 의해 숨겨졌기 때문이며 이차적으로는 고대문헌이 침략자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파괴되거나 소각당하는 운명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뉴튼은 "위대한 연구자들은 금속의 변질이라는 비밀 외에 몇가지 엄청난 비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은 이유는 헤르메스가 쓴 진실을 입에 올리면 세계가 엄청난 위험에 빠지게 i홱명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르보프스키는 비밀지식을 갖춘 자들은 특별한 계급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들의 명칭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브리튼제도에서는 드루이드, 인도에서는 바라문, 이?트에서는 신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이집트의 경우 국가가 생겨났을 때 신관들이 지식의 독점을 이용하여 신관층을 만들고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토투스는 이집트의 신관을 방문하였을 때 대를 이어 계승되어 온 가장 훌륭한 신관의 입상을 341개나 보았다고 한다.i 이것으로 따져볼 때 그때까지의 신관제도가 적어도 1만년 이상이나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인도의 고전 {리그베다}에는 마법의 비밀을 터득한 자는 그것을 다른모든 사람에게 숨기고 지켜야 한다는 구절이 있으며, 이집트의 마법을 기록한 파피루스에는 <입을 다물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지식을 숨기기 위해 그것을 구전으로만 전하거나 지식을 암호화하였다. 연금술에 대한 수많은 초고는 특히 그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그 수는 10만 종에 달하는데 이것은 약 10만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종이 또는 양가죽에 써서 후세에 남기려고 했음을 알려준다. 이것으로 보아 지식을 갖춘 자들은 스스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건 혹은 지식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전해 줌으로써 파생되는 손해를 막기 위해서건 철저하게 지식을 한정된 사람에게만 전수하거나 암호로 남겼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지식은 비공개적인 지식의 전수 방식 이외에도 인간 스스로가 지식을 파괴함으로써 제대로 남겨지지 못하였다. 1549년 스페인의 수도사디에고 데 란다는 종교 전파를 위해 정복한 지 얼마i 되지 않은 멕시코를 찾아갔다. 그는 마야의 신전에 고문서를 소장한 거대한 도서관이 있는것을 발견하건는 이교도 신앙의 중심 자체를 파괴하기 위해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과 기호가 가득 찬 옛 서적과 문서를 불태워 버렸다. 이런 식으로 마야의 모든 도서관은 파괴되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고서 세 점뿐이다.

잉카에서도 비슷한 비극이 일어났다. 잉카제국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통치자가 예언자에게 그 대책을 물었더니 예언자는 문자 사용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잉카의 모i든 문서와 책은 파과되었고 문자의 사용은 금지당하였다. 진시황제는 분서갱유를 통해 셀수 없이 많은 책을 없애버렸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천문학과점성술에 관한 모든 책을 소각시켰다.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는 소아시아의 페르가몬에 있던 특별한 고문서를 20만권이나 소장한 도서관을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하였는데 이들이멸망하자 이 고문서들도 모두 불태워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멤피스에 있던 푸타 신전의 도서관이나 예루살렘 신전의 도서관도 모조리 소실되었다. 또 로마의 디오크레i릿㈌ 황제는 자신의 권력을 보존하고강화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고대 문서를 파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각지의 문화 사이에는 여러 유사점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정체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바빌로니아의 신관인 베로소스의 책에서는 다양한 언어의 발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최초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너무 믿어 신을 경멸하고 자신들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오늘날 바빌론이 있는 곳에 높은 탑을 쌓았다. 이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박하여 탑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그것을 쌓던 사람들은 땅 위로 떨어졌다. 탑의 폐허는 바벨이라 이름 붙여졌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같은 어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신은 그들에게 다른 말을 하게 만들었다.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는 창세기 11장에도 나온다. 한편 멕시코의 토르테카 전설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묘사되어 있다.
"홍수 뒤에 몇명의 사람이 살아남아 차차 그 수가 늘어날 때 사람들은 높은 탑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갑자기 혼란되기 시작하여 그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는 곳을 바꾸려고 제각기 여러 지역으로 떠나갔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아메리카의 많은 민족들의 전설 속에는 <신의문>에 관한 몇가지 전설이 남아 있다. 그런데 바벨이란 말의 의미도 신의 문이다. 이밖에도 먼 옛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는 전설이 중동지방은 물론 이러한 내용이 씌어 있는 신전과 고서를 고대 인도나 고대 이집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흥미를끄는 것은 민족의 차이는 있지만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고고학자 A.훔볼트는 이렇게 말했다.

"아메리카의 많은 신화, 기념물, 시간계산법, 우주발생에 관한 사고는동아시아와 놀랄만큼 유사하다. 이 사실로 보아 태고 시대에는서로 어떤 관계가 잇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933년 고고학자 바이덴라이히는 북경에 가까운 주구점 동굴에서 두개골과 해골을 발견하였다. 그 두개골 중의 하나는 나이 먹은 옛 유럽인의 것이었고, 또 다른 것은 좁은 머리를 가진 여자의 것이었는데, 특징적으로 보아 전형적인 멜라네시아인이었다. 세번째의 두개골은 뚜렷한 에스키모의 특징을 가진 젊은 여성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럽의남자, 열대지방의 여자와 북극권의 여자가 중국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것이었다.
서남 아프리카의 브란드베르그 산중의 바위에 그려진 그림은 백인 여자들과 같이 있는 부시맨들을 그린 것이다. 이 여자들은 아주 유럽적인 얼굴인 흰색 페인트로 그려졌으며 머리털은 붉은 색이나 노랑색으로 나타냈다. 또 옷에는 보석들이 있고, 조개 껍질과 보석으로 정성스레 치장했으며 가슴에 활과 물주머니를 차고 있다. 이 여자들은 구두를 신고 있는데 흑인들은 신고 있지 않다. 이들 젊은 여자들은 3천 5백년 전에 크레타 섬이나 이집트로부터 왔음에 틀림없는 용감한 여행자라고 생각하는 고고학자도 있다.
그러나 이들 백인여자들에게는 기묘한 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1만2천년 전에 살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카스피언과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둘 다 허리가 길고, 활을 가지고 있으며, 머리 장식을 하였고, 다리에는양말 대님같은 같은 십자형의 리본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촉은 동남아시아에서 태평양을 거쳐 아메리카의 해안에 이르는 길, 유럽 해안에서 유카탄에 이르는 길, 인도에서 남북 아메리카에 이르는 길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서로 수만 킬로 떨어진 민족간에 고도로 발달한 지식과 사고에서 놀랄만한 유사성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결합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그 진원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다만 과학이 과거에 대한 정보와 사실을 축척함에 따라 문명이 발생한 근원지가 존재했었음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근거를 얻어가고 있을 뿐이다. 즉 문명의 여명기에는 모든 민족이 동일조건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5) 고대 문명의 진원지
가상적 문명의 근원지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문명이 존재했다고 생각되는 시기와 우리 시대 사이에는 수천년 혹은 수만년의 간격이 있다. 신화와 전설은 광대한 육지가 홀연히 모습을 감춘 이야기를전해주고 있다.
플라톤도 이러한 육지가 대서양 한복판에 있었다고 적어 놓았다. 플라톤은 이 이야기를 솔론에게 들었다고 하며 솔론은 이집트의 신관으로 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신관은 솔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당신네들은 모두 젊네. 그렇지만 고대로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옛 의견도 없으며 흰 머리에 서리를 얹어 놓은 것 같은 과학도없네"
그리고 플라톤 학원의 교사이기도 한 철학자 크라툴로스도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대서양에 가라앉은 거대한 섬의 역사가 기록된 둥근 기둥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또한 역사에 기록된 시대 이후도 대서양 해역에서는 일찍이 존재했던 몇 개의 육지가 차례로 바다 속으로 사라졌던 듯하다. 이것은 고대의 많은 역사가와 지리학자가 하나의 섬뿐 아니라 크로 노스 섬과 포세이도노스 섬 등이 바다속으로 차례로 모습을감추었다고 쓴 것에서도 확인된다. 지브랄타 해협 동쪽에 있었던 이 섬들은 대부분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제작년도가 분명하지 않은 고대 에게해 해도의 사본이 오늘날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 해도를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섬들과 함께 오늘날의 해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섬들과 육지가 그려져 있다. 이것으로 보아도 대홍수가 일어남으로 인해 바다 속으로 많은 섬과 육지가 잠겨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평양에서도 이런 전설은 전해져 오고 있다. 뉴질랜드 서남방에 있는 섬들의 전설 중에는 카 호우버 오 카네라는 이름의 육지가 태고 시대에 바다에 의해 삼켜져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스터 섬의 주민은 모토우 마리오 히와라는 이름의 육지가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캐롤라인 제도에 속한 포나페 섬 근처에서 반 가량은 바다에 잠긴큰 도시의 폐허가 발견되었다. 인도양에도 커다란 육지가 있었지만 태고 시대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씌여진책에 태고 시대에는 인도와 아프리카가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오며, 고대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는 적도 남인도양에는 일찌기 큰 섬이 존재했었다고 썼다.

이러한 고대학자들의 말은 최근에 이루어진 발견으로 확인되고 있다. 언어학자들은 남인도와 동아프카의 드라비다계 언어의 유사함을 찾아냈다. 또한 이들 지역의 식물과 동물도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섬에는 아프리카 이외에는 인도에서 밖에 볼 수 없는 여우원숭이가 10종이나 살고 있다. 여우원숭이는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대양을 횡단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이 섬에서 볼 수 있는 26종의 식물은 여기를 제외하면 남아시아에서 밖에 서식하지 않는다. 이 섬에서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에도 없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대서양의 중앙부로 나오면 아틀란티스의 본섬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일컬어지고 있는 아조레스 제도의 남쪽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던 조종사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는 보고를 하였다. 태양광선이 경사지게 비춰져 최고의 시계조건이 되어 물이 맑게 보일 때 80~200피트의 바다 속에 수중도시 같은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와서는대서양의 마데이라 섬 부근에서 해저조사를 하고 있던 소련의 조사대가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사진들은 1974년, 깊이 600피트의 안펠 해산 정상에서 잠수함 아카데미샨 페트로프스키 호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이 조사는 고고학이 아니고 해양학상의 목적으로 행하여진 것인데 소련 해양학연구소의 일원이며 사진의 책임자인 우라지밀 마라케프는 사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벽과 윤곽이 선명한 돌 계단이 비쳐진 것을 지적하고 있다. 아틀란티스를 연구하는 학자인 비라우는 "대양의 바다 밑에 지금도 아틀란티스는 잠자고 있으며 현재도 보이는 것은 그 가장 높은 정상, 아조레스 제도뿐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의 곳곳에서도 수몰된 역사 이전의 유적은 존재하고 있다. 남미의 북쪽 연안에서는 아래쪽으로 커다랗게 부채꼴 모양으로 훑어가다 보면 베네주엘라 연안까지 백마일에 달하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 이것은 인공물로서는 너무나 길어서 저연물로밖에 간주할 수 없다고 학자들이 말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혼두라스와 유카탄 반도 앞바다에는 육상에서는 소멸된둑길이 바다 속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 지금도 보인다. 쿠바 북쪽의 바다에는 수 에이커에 걸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넓은 유적들이 있다.
플로리다 반도의 남쪽 약 40마일 에는 해면 밑 수백피트나 되는 곳에 피라밋을 닮은 거대한 물체가 잠수함 탐지기에 의하여 거의 윤곽이 드러났으며 희미하지만 틀립없는 영상이 수중 텔레비젼에 포착되고 있다.

페루의 나스카 해구 1.5마일의 깊은 곳에는 지금도 거대한 벽과 계단피라밋이 서 있으며 남태평양 제도, 일본, 남인도 등의 앞바다에도 미확인의 해저 유적이 잠자고 있다. 이와 같은 건축물의 폐허는 거의가 아틀란티스의 기억을 통해 전세계의 전설의 일부가 된 최후의 세계 대이변과 거의 관계가 있다고 보아도 좋을것이다.

6) 발굴되는 멸망의 화석들
그 진원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시대 이전에 발달된 문명이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생각이 점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가지게 하고 있다. 이 사실을 설명하는데 있어 혹자는 우주인의 방문설을 내세우고 있다. 에리히 폰 테니켄과 같은 사람의 가설인데, 그는 인간과 비슷한 지구 외의 생물이 방문하여 지구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서 세계문명을 쌓아올리는 정신적 능력을 적어도 10만년 이전부터 인류가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로 본다면 지구인이 스스로 한번이상 고도의 문명을 쌓아올렸고 그것이 파멸하여 근소하게 살아남은 것이 똑같은 과정을 다시 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도 설득력이 있을것이다.

이집트의 신관이 솔론에게 하였다는 말을 다시 들어보자.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인류는 가지가지의 원인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파멸을 경험할 것이네. 언젠가 시기가 오면 하늘에서 빗물이 질병과 같이 쏟아져 문자나 교육을 결여한 자들만 남게 하네. 이리하여 당신네들은 다시 어린애 시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며 우리들에게, 당신네들에게도 옛 시대에 무엇이 일어났는가 무엇 하나 모르게될 것일세.
그러면 고대문명이 멸망한 원인은 무엇일까.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알수 없다. 그러나 태고의 역사적, 종교적 문헌 가운데 문헌 가운데 보존되어 온 어떤 종류의 문화적 기록은 역사 이전 몇천년이나 옛날, 지구상에서 원폭과 비슷한 것이 전쟁에 사용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현대문명이 원시적인 형태에서 원폭의 개발까지는 약 6천년이 걸렸다. 그런데 인류는 천년의 단위가 아니고 백만년의 단위로 셈하는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무네 그 발달된 두뇌는 적어도 10만년 전부터 현대인의 두뇌와 동등하였던 것이다.

최근 20여년간 고고학적 탐험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분명하게 드러난 불가사의한 문명의 잔재들은 당시의 인류가 과학적 진보의 시스템을 터득하고 있었다면 그들에게도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그들도 현재의 우리들과 같이 제어냐 파멸이냐 하는 따위의 고민에 직면하였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내용의 대부분은 고대 산스크리트어 문헌인 {마하바라타},{라마야나}, {프라주나}와 베다성전, {마하바라 차리타} 등에서 볼수있다. 이들 문헌은 지중해나 중동의 고대문헌이 거의 소실된 것과 달리 고대부터 현대까지 별탈없이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마하바라타}에는고대 전쟁의 가공할만한 신병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우주의 힘이 담겨진 단 한 개의 날으는 도구였다.

태양을 만 개 모아놓은 정도로 밝은 백열한 연기와 불기둥이 무섭게 빛나게 솟아올랐다.

그것은 미지의 무기이며 철의 번개, 거대한 죽음의 사자였다.

브리슈니와 애다카의 전 민족을 그것은 재로 변하게 하였다.

시체는 너무 타버려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털과 손톱은 빠져나와 도자기들은 이유없이 반동강이 나고 새들은 하얗게 변하였다.


또 {라마야나}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그것은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지구를 순간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연기와 불꽃을 피우며 우렁차게 올라가는 위대한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자는 죽음 ---

이 문헌들이 처음으로 번역되어 서방세계에 알려진 19세기 후반에는 다분히 동양적 공상의 하나라고만 이해되었다. 그러나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투하되면서 서방인들은 이들 고대문헌에 대한 생각을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이것을 믿을 수 없는 기록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쾌한 예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파키스탄에 있는 광대한 도시의 유적에 관한 이야기는 앞의 생각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이 유적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 역사 이전의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적은 모헨조다로, 하라파라고 불리우는데 실제 번영하고 있던 당시의 이름은 알 수 없다.그들의 문자와 체계는 아직 해독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러한 체계가 지구 정반대 쪽에서도 발견되었다.
다름아닌 태평양에 있는 이스터섬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는 아직 알 수는 없으나 두 곳 모두가 동시에 멸망하였다는 점은 부인할수 없다. 파멸이 너무나도 갑자기 ?궁>틸? 주민들은 피할 틈도 없이 잿더미 속에 파묻혀버렸다. 땅 속에서 한꺼번에 발견된 주민들의 유해는 몇천년이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까지 발견된 유해들 가운데 에서는 가장 강한 방사능을 나타내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사망자들이 나타내는 수치와 비슷할 정도이다. 또 방사능을 가진 해골이 인도에서 발견된 일이 있었다. 이 방사능은 보통 수준의 50배 가량이었다.
핵폭발로 인한 파멸이외에 세계 여러민족들의 경전과 신화속에서 나타나는 대홍수로 인한 파멸도 신빙성 있어 보인다. 성경의 창세기가 씌여지기 수천년 전에 씌여진 수메르의 점토판에서도 인류를 절멸시키기 위해 신이 불러일으킨 대홍수 이야기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경전이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고문헌 속에서도, 태평양의 여러 민족의 민담속에서도 남북 아메리카의 원주민의 전설속에서, 한민족의 한단고기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파멸의 원인들, 즉 호우수 외에 폭풍, 지진, 분화활동 등을 동반한 대이변에 의한 전설은 아프리카 민족들 사이에서돛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전설들에 따르면 대홍수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서 일어난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대서양에서 멀어짐에 따라 이변의 규모가 점점 작아져 대홍수에 관한 전설만으로 한정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지구의 어떤 지역에서는 엄청난 밀물이 밀려와 물이 산꼭대기를 덮을 정도였지만, 반대지역에서는 썰물 현상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동쪽으로 가면서 수위는 점점 낮아진다. 따라서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물이 가장 높은 산의꼭대기까지 밀려왔지만 그리스에서는 언덕과 큰 나무꼭대기 부근까지, 페르시아에 이르면 사람의 키 정도까지만 차올랐다.
그런데 대홍수로 인한 파멸의 전설이 신빙성이 있게 하는 이유는 대홍수라는 사건의 보편적 분포보다는 이 사건에 대한 세세한 부분의 내용까지도 일치한다는 점이다.

7)고대문명의 파멸
모든 전설에 대홍수를 예견한 예언자들이 등장한다. 기독교의 신, 바빌론의 신, 아즈텍의 신, 인도의 신 모두가 다가올 재앙에 대해서 경고한다. 그리고 그 경고를 받아들여 목숨을 건진 사람은 거의가 남녀 한쌍이다. 그들은 갖가지 동물을 데리고 살아 남았다. 또한 불어난 물이빠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산꼭대기에 상륙하여 새를 날려 보낸다. 새가 나뭇가지를 물고 오면 물이 빠진 것으로 알고 밖으로 나갔으며, 그때 홍수가 끝났음을 아리는 무지개를 보게 된다. 이 무지개의 이야기는 아메리카 인디오에게서, 폴리네시아의 신화에서도 수메르의 서사시속에서도 나온다.

우리는 대홍수의 진원지가 바다였다는 내용의 많은 전설과 문헌을 접할 수 있었다. 대홍수가 일어날 당시 어떤 힘이 바다에 작용한 것인가 가 문제인 셈인데 이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갖가지 이야기는 거의가 어느날 하늘에서 알지 못하는 천체가 지구로 떨어졌다든가 멀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500년 전의 일이다. 거대한 운석이 대기밀도가 높은 곳으로 빨려들어온 후 산산이 부서져 운석의 비가 된 채 지구에 떨어졌다. 이 운석중 하나는 무게 550톤에 달하였다. 이 운석은 수천입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현제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 있는 거대한 호수 칼리뷰하얄과 호이다. 또 1868년에는 바르샤바에 운석비가
약 10만 개의 돌로 떨어져 내렸다. 어떤 것의 무게는 10킬로그램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규모의 낙하는 오랜 세월 동안 종종 있었던 일이다.
우주에서 날라온 물체가 지구와 충돌했음을 보여주는 흔적 중에 1908년 6월 30일 아침 시베리아의 예니세이 강 상류에 있는 포토 카메니야 퉁그스카 천의 오른쪽 지류에 위치한 탐바 유역에 우주 물체가 떨어져 순식간에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이 사건은 퉁그스 운석의 수수께끼라고 불리우는데 아직도 그 정체가 해명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구에 접근한 거대한 소행성의 인력에 의해 바닷물이 지구의 한쪽에서는 거대한 만조로 한쪽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지구가 과거에 혜성이나 혜성의 꼬리와 충돌하였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지구가 혜성과 충돌한다면 그때 방출되는 에너지는 수소폭탄 50만개 분에 상당한다고한다.
또 달이 바다에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가설도 있다. 달은 원래 지구에서 매우 가까운 궤도를 도는 소행성이었는데 달의 옆을 거대한 우주물체 가 지나갔기 때문에 달은 자신의 궤도를 잃고 지구의 인력권 안으로 떨어져 지구의 위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달이 지구에 최대한도로 접근했을 때 만조의 높이가 수킬로미터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민족의 전설 속의 홍수 이전 시대에는 달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수석감독관이었던 아볼로니우스도 옛날에는 지구의 하늘에서 달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기원전 3세기경에 썼다.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낙사고라스도 달이 나타난 것은 지구가 생긴 훨씬 후의 일이라고 썼다.

그리고 대홍수만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폭풍, 지진, 분화활동 등을 동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메리카의 인디오의 고서 {포플부흐}는 대이변 뒤에 극심한 추위가 시작되고 해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또 아마존의 열대림에 사는 부족은 홍수 뒤에 찾아온 오래 지속된 혹한에 사람들이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일으킨 또 하나의 원인은 지구 양극의 변화, 즉 궤도에 대한 그 경사각도의 변화이다. 남극과 북극 지역에서 석탄층이나 목재탄화물과나뭇잎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남극에도 2억5천만년 전에는 초목이 번성했으며, 6천만년 전의 북극은 태평양 남쪽에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거대한 지질학적 변동에 의해서 일어날수 있다.
그렇다면 대홍수를 동반한 지진, 분화활동 등 최악의 이변들은 언제 발생하였으며 그때의 양극의 위치는 어디일까 ? 미국의 지구물리학자 오겔리는 몇차례에 걸친 조사 끝에 마지막 빙하기에는 북극이 현재의 북위 60도선이 통과하는 지점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북극점 이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게 만든 이변의 발생시기는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 다른 견해로는 미국의 지질학교수 챨스 허프크트의 이론이다. 그는 극이동은 지구 내부의 융용 마그마의 초석의 변동이 원인이되고 남극의 중량 증대에 따라 측면 방향에로의 회전팩톨에 도움을 받아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의 지축은 움직이지 않고 지구의 외피, 즉 지각을 형성하는 표면만이 새로운 위치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지구는 지축상에서 요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공간을 회전하면서 미세하게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과거 10만년 사이에 3번의 극이동이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북극이 캐나다 유콘 지역에서 그린랜드 해로 이동하고 다음에는 허드슨 만으로 옮겼으나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으며, 세번째의 이동의 시기는 약 1만 2천년 전에 끝넒다고 한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인 리비는 아메리카 대륙을 연구한 결과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약 1만4백년 전, 인간의 자취가 갑자기 사라졌으며 바로 이 무렵에 인류의 연속성에 단절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 현상은 그에게 많은 의문을 던져주었다. 왜냐하면 남뵤 유럽, 프랑스 중부의 라스코 동굴벽화는 기원전 1만 5천년경의 것으로 이 당시에도 인류는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빙하기 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이 얼음에 덮여 있지 않은 이상 인간이 존재했을 것인데도 인간의 자취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리는 가장 오래 된 유적은 약 1만 4백년 전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리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러한 단절을 아메리카, 중앙아시아에서도 볼수 있다.
소련학자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는 앞의 다양한 데이타 이외에도 고대 달력이 시작되는 해를 계산하여 기원전 1만년경을 고대문명의 파멸의 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그가 계산해 본 결과 인도의 태음(태양력)이 시작되는 해는 기원전 1만 1천 6백 5십 2년이고, 마야의 달력이 시작되는 해는 기원전 1만 1천 6백 5십 3년임을 발견하였다. 또 이변이 끝난 해를 나타낸다는 앗시리아식과 이집트식의 두가지 달력을 조사해 본 결과 이집트 달력의 시작은 기원전 1만 1천 5백 4십 2년이었고, 앗시리아 달력의 시작은 기원전 1만 1천 5백 4십 2년이었다. 이를 근거로 그는 고대문명을 파멸로 이끈 크나큰 이변이 기원전 1만 1천 6백 5십 2년이나 1만1천 6백 5십 2년에서 기원전 1만 1천 5백 4십 2년까지의 기간중에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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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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